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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보물 제622호 완주 화암사 우화루.jpg|썸네일|300픽셀|보물 제622호 완주 화암사 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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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보 제316호 완주 화암사 극락전.jpg|썸네일|300픽셀|국보 제316호 완주 화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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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암사 푯말과 계단.jpg|썸네일|300픽셀|화암사 푯말과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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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례 화엄사-각황전 내부.jpg|썸네일|300픽셀|구례 화엄사-각황전 내부]]
[[파일:우화루에 매달려 있는 목어.jpg|썸네일|300픽셀|우화루에 매달려 있는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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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례 화엄사 대웅전.JPG|썸네일|300픽셀|구례 화엄사 대웅전]]
[[파일:우화루 기둥에 걸린 괘불도 사진.jpg|썸네일|300픽셀|우화루 기둥에 걸린 괘불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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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jpg|썸네일|300픽셀|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파일: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적묵당.jpg|썸네일|300픽셀|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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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보 35호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jpg|썸네일|300픽셀|국보 35호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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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례 화엄사 보제루(도유형문화재 제49호).jpg|썸네일|300픽셀|구례 화엄사 보제루(도유형문화재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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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례 화엄사 사자탑.JPG|썸네일|300픽셀|구례 화엄사 사자탑]]
  
'''화암사'''(花岩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위치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소속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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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華嚴寺)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 남아있는 <화암사중창비>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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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사찰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거대한 중층 금당으로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으로 유명하다.
  
완주 화암사 중창비는 1425년(세종 7)에 성달생(成達生)이 절을 중창하고 기념하기 위해 쓴 글이다. 3칸의 불전을 매우 장려하게 짓고 차례로 승당(僧堂), 조성전(祖聖殿)등 여러 건물들을 완성하였는데 당시 지은 3칸 불전이 극락전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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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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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하여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1년)에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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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절내에서는 동.서 두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보이며 동측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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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건물중 각황전은 국보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이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 뜰에 서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보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각황전 왼편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국보이다. 각황전 내부 후편에 위치하고 있는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로 1997년도에 지정되었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현존하는 유일한 하앙식 건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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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경내 보물 가운데서도 대웅전 양편에 서있는 5층탑은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또한 이곳의 대웅전은(보물)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훌륭한 경관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소와 절경이 산재해 있다. 한편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19번국도변(약 35㎞) 에는 가로수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매년 4월 벚꽃이 만개할 때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인근에는 섬진강매화마을, 고소성 군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쌍계사등 많은 관광지가 있어 수많은 상춘객이 몰리는 곳이다.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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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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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의'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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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법사가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 7층탑 · 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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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지》(鳳城志)에 따르면, 문무왕 때 의상국사가 왕명을 받아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절에 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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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이 다시 증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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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중수가 잇따랐다. 943년(고려 태조 26년)에 도선의 유지에 따라 오백선찰을 먼저 건립하고 뒤에 삼천팔백사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찰 중 화엄사가 제일 먼저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광종대, 문종대, 인종대, 충숙왕대에 걸쳐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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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는 벽(壁)을 청석(靑石)으로 두른 전각이 있었고 이 청석에 화엄경이 조각되어 장육전(丈六殿, 부처의 키가 6척이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이름)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년)에 불타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지금도 간혹 청석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보인다고 한다. 벽암선사가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36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재건하였고, 재건 후에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그외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화암사는 우화루와 극락전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 있는 입구()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극락전 왼쪽에는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뒷편에는 산신각 우화루 옆에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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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27년(1701년)에 화엄사 중건을 완성하고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
  
옛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기록이 뚜렷한 곳으로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한 건축양식이 선인들의 슬기를 새삼 느끼게하는 곳이기도 하다.이밖에도 화암사에는 지방문화재인 동종과 후불, 고승 산신정화가 있으면 4기의 부도도 있다. 도심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심산유곡의 화암사는 원형이 손상되지 않은 건물로,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모습 그대로여서 도시민의 휴양장소로 알맞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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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건물은 대웅전 이외에 각황전(覺皇殿) · 보제루(普濟樓) · 명부전(冥府殿) · 원통전(圓通殿) · 영산전(靈山殿) · 응향각(凝香閣) · 적묵당(寂默堂) · 금강문(金剛門) · 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
  
== 소장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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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람 배치 ==
* 완주 화암사 극락전 - 대한민국 국보 제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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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쪽에 1칸 1호의 일주문이 있어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라는 편액이, 다음에 금강역사 · 문수보살 · 보현보살의 상을 안치한 금강문이, 조금 서쪽에는 사천왕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이 있다.
* 완주 화암사 우화루 - 대한민국 보물 제662호
 
* 완주 화암사 동종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
 
* 완주 화암사 중창비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 관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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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가 일반적인 다른 사찰들과 차이점을 든다면, 보통 절이라면 탑이나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이기 마련인데, 이 화엄사는 '''각황전'''이 압도적으로 크다. 물론 각황전 역시 부처상이 있는 금당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크기 차이 때문에 가람의 배치가 지나치게 비대칭적으로 변해 좀 이상해졌다. 게다가 각황전 앞의 석등과 그 아래의 서 오층석탑은 삐뚤게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앞 아래에 있는 동 오층석탑 역시 정 중앙에 있지를 않고 삐뚤게 배치되어 있다.
차량 진입 금지 푯말이 화암사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여느 사찰과 달리 화암사로 가는 길에는 별다른 입구가 없다. 산속 걸음이 그대로 속세와의 단절을 말해줄 뿐이다. 인위적 장치 없는 등산로를 걷는 것과 같이, 작은 절 하나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흙길을 지나 돌길을 걸어 계곡을 건너야 끝나지 않을 듯한 길이 끝나고, 철계단을 올라야 화암사 근처에 겨우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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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 더 이상한 점은, 중문(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과 각황전을 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보제루를 여느 절과 달리 밑으로 못 지나가고 동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단한 의도가 숨어있다.
  
계단 뒤로 보잘것없지만 강한 소리를 내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단아한 꽃모양 장식들이 계단 난간에 매달려 소소한 멋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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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방문자가 보제루를 오른쪽으로 멀리 돌게되면 각황전은 멀어지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가깝다. 그렇게 되면, 원근감에 의해 각황전과 대웅전의 크기 차이가 많이 줄어든다! 또한 보제루를 돌아 삐뚤게 배치되어 있는 각황전과 대웅전, 탑과 석등 전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그 순간 마치 일직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서 오층석탑-석등-각황전이 일렬로 놓이고, 동 오층석탑과 대웅전이 일렬로 놓이게 되는 탁월한 시각적 배치를 보여준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한 차례 길을 돌아야 절의 처마끝이 드디어 고개를 내민다. 이곳까지 걷는 데 20여 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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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린 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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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가 가장 융성했던 신라 경덕왕 때엔 화엄사에 81 암자가 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거의 없어지고 근세까지 10여 개의 암자만이 남았다가 한국 전쟁과 조선인민유격대 토벌 작전 탓에 그마저도 거의 퇴락해버렸다. 그래서 현재는 구층암, 금정암, 지장암 등 세 암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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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람배치도.jpg|썸네일|600픽셀|가운데|화엄사 가람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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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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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도 전하는 부속 건물들로서 이들은 모두 신라 시대에 속하는데 거의가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는 어느 사찰보다도 풍성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깨달은 황제가 산다는 뜻의 각황전(국보 제67호)이다. 조선 중후기인 숙종 때 지어진 건물이지만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임금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 다음 큰 규모로 지어진 법당이다. 본래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소실된 곳에 복원하면서 숙종 임금이 현판을 <각황전>이라 사액해서 각황전으로 부른다.
  
화암사에서 처음 마주하는 건물은 보물 제662호로 지정된 '''우화루'''다.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라는 뜻의 우화루는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워진 누각이다. 절에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통 때는 개방하지 않는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모습은 기둥으로 받친 2층 높이의 건물이다. 우화루 옆으로 일반 가정집에서나 놓는 문간채가 들어서 있다. 3칸으로 이루어진 문간채의 마지막 칸이 화암사 중앙으로 향하는 대문이다. 일주문 같은 별도의 입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보통의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입구의 형태도 특이하다. 문간채가 누각 옆에 세워진 이유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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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앞에는 각황전 규모에 걸맞은 거대한 석등(국보 제12호)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높이가 무려 6.4미터, 직경이 2.8미터에 달한다. 각황전 왼쪽 뒤로 돌아가면 탑전이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이형탑 가운데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탑으로 알려졌다. 사자 네 마리가 기단부를 대신해서 탑 전체를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안에는 연기조사의 출가한 어머니가 새겨져 있고 탑 건너편 석등 아래에는 효심 깊었던 연기조사가 무릎을 꿇은 채 차공양을 올리는 모양을 띠고 있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경내 중앙이다. 대문 옆 건물 외벽에 낙서인 듯 보이는 글씨들이 어지러이 씌어 있다. 사찰 대문을 처음 세울 때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밖에서 보였던 우화루 내부 왼편에 목어가 묵직하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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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화엄사에 소장되어 있는 영산회괘불탱도 국보 제301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동오층 석탑(보물 제132호), 서오층 석탑(보물 제133호), 대웅전(보물 제299호),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 300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서오층 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등이 있다.
  
우화루와 함께 보물로 지정된 적묵당이 마당 왼편에 자리한다. 적묵당은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독특한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휘어진 나무에 틈을 내어 작은 나뭇조각을 끼워 곧추세웠다. 소박하지만 섬세한 당대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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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와 부용영관 선사가 이 매화나무를 보고 시를 읊었다 해서 일명 부용매로 불리는 화엄사 매화나무(천연기념물 제485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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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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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1962년에, 화엄사영산회괴불탱은 1997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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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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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은 국보 제67호이다. 석가모니 · 아미타불 · 약사불의 삼존불과 법화경의 사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양왕보살, 관음보살의 상을 안치한 화엄사의 중심 법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의 자리에 숙종 25년(1699년)부터 28년(1702년)까지 새로 지었다. 법당을 지은 후 숙종이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사액하였다. 각황전의 사액에는 거지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하였다는 민간의 설화가 전한다. 하지만 숙종에겐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실재의 역사는 아니다.
  
사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중앙에 있는 노쇠한 건물이다. 바로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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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기 및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찰 건물로, 규모에 있어서도 근정전 다음 가는 큰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조선시대 양식의 웅대한 중층불전으로, 내부에는 청판을 깔고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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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앞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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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華嚴寺覺皇殿前石燈)은 국보 제12호이다. 각황전 바로 앞에 있으며 높이 6.4미터, 직경 2.8미터의 큰 석등이다. 기석(基石)은 8각, 간석(竿石)은 병 모양으로 중간에 띠를 둘렀고, 각 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신라 시대 불교 전성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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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자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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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은 국보 제35호이다. 높이 7.17미터. 하단의 각면에 3구씩 도합 12구의 천인상을 양각으로 표현했고, 상성기단의 네 구석에는 앉아 있는 암수사자를 기둥처럼 세우고 그 중앙에 있는 스님상을 두어 위의 무게를 받게 하였다. 탑신은 기단에 비해 비율이 작은 느낌이 드나 층급(層級, 받침)은 5단이고 조층에는 각 면마다 문비(門扉)의 문양이 새겨 있으며 그 양 옆에서 인왕상(仁王像)이 배치되어 섬세한 효과를 낸다. 착상이 기발하고 특이한 형식을 갖춘 점에서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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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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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은 국보 제301호이다. 가로 7.76 c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 보현 보살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십대제자, 2구의 분신불, 십장제불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군집도 형식이다.사천왕 가운데 2구는 상단에 나머지 2구는 하단에 그려 사방을 수호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국보는 국가 지정 보물들 가운데 그 가치가 좀더 특별하여 국가적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보물에 부여되는 것이다. 숲속에 감춰진 듯 자리하고 있던 화암사가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된 것은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되면서 부터다. 1970년대 말부터 화암사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때 보수공사도 함께 진행했는데, 우화루와 극락전에서 건축 당시 지붕을 올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자료를 종합한 결과, 극락전이 지어진 때는 고려 후기인 1297년에서 1307년 사이, 그후 중창된 것은 1425년에서 1440년으로 추정되었다. 또 정유재란 때 극락전이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에 재건되고, 1714년에 다시 보수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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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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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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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은 보물 제132호이다. 높이 6.4미터, 대석(臺石) 1변의 길이 2.8미터이며, 대웅전 아래 광장에 동·서 두 탑이 서로 마주 섰는데, 동 오층석탑은 서 오층석탑에 비하면 기교가 없다.
  
여러 자료로 미루어, 소실 이전의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극락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지만 그 이전 백제시대 건축술을 따른다고 한다. 가장 큰 예로, 극락전에 적용된 하앙식 건축술을 들 수 있다. 하앙이란 지붕과 기둥 사이에 끼운 기다란 나무판을 말하는데, 이것은 백제시대 건축술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한 것으로 전해지는 몇몇 건물과 탑에서 이 하앙식 구조가 발견되었다. 화암사 극락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그 흔적이나 문화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하앙식 구조가 백제를 통하지 않고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건너온 건축술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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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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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이다. 높이 6미터이며, 2층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하단 4면에 각 3구의 십이지상을, 상단 각 면에는 사천왕·인왕 등의 상을 2구씩 각각 새겼다. 탑신은 비교적 좁고, 처마 끝이 나와 있는 것 등 웅건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극락전에 사용된 하앙식 구조가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건축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앙식 구조가 백제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외에 다른 사례는 발견되지 않아 화암사 극락전이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증거인 셈이다.
+
;대웅전
 +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299호이다. 건평 35평, 높이 35자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 : 정유재란 때)에 불타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벽암선사가 중건한 것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다. 또 내부의 불화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식 구조는 특이하게 건물 앞뒤의 모양새가 다르다. 앞부분은 용머리를 조각하여 구조재에 장식을 더한 형태이고, 뒤쪽 하앙은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뾰족하게 다듬었다. 법당 내부 천장인 닫집에는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꿈틀거리는 형상을 조각했다. 세월이 흘러 색이 바랬지만, 용의 비늘 하나에도 섬세한 색칠이 엿보인다.
+
;원통전 앞 사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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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은 보물 제300호이다. 높이 10.3자, 폭 6.3자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다. 평방 4각형으로 아래에는 사천왕(四天王)을 조각하였으며, 가운데에는 4마리의 사자가 감로수(甘露水)를 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되었다.
  
극락전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인 동종이 있다. 크기가 작은 이 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광해군 때에 다시 만들어졌다. 밤이 되면 종이 스스로 울려 스님을 깨우고 자신을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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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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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화엄사화엄석경은 보물 제1040호이다. 엷은 청색 돌에 화엄경을 새긴 것이다.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경각을 세우고 비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장육전이 소실되면서 함께 부서졌다. 지금은 약 9천여 개의 파편이 발견되어 보관 중이다.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하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2014년 11월, 화암사에 있는 탱화 한 점이 문화재로 새롭게 등록되었다. 법당 밖에서 행사를 할 때 걸어놓는 대형 불화인 괘불도이다. 이 괘불도는 불교 용어로 법신(法身, 진리 그 자체)을 뜻하는 비로자나불이 그려진 보기 드문 탱화이다. 채색에 서양화법이 접목된 근대적 불화 기법을 보여준다. 괘불도는 현재 법당 안에 모셔두고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찰 입구 우화루에 특수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촬영을 위해 괘불도를 꺼내 펼쳐든 것이 20여 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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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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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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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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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화암사는 김제 금산사의 말사이다. 건물 자체가 국보이고 보물이면서 여러 문화재가 있는 만큼 더욱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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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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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 천연기념물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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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화엄사 매화: 천연기념물 제485호
  
 
== 이용안내 ==
 
== 이용안내 ==
;개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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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락처 : 061-783-7600(화엄사 종무소)
동절기에는 오후 5시, 하절기에는 오후 5시 30분이면 대문이 잠긴다. 산속은 더욱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에 사찰을 돌아보는 시간을 잘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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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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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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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4,000원 / 청소년·학생 2,000원 / 어린이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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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30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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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4,000원 / 청소년·학생 1,600원 / 어린이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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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시간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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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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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
 +
* 시외버스
 +
:* 서울(남부터미널) → 구례 06:40(첫차) 22:00(막차) 2시간(배차시간) 3:10(소요시간)
 +
:* 남원 → 화엄사 07:00(첫차) 19:10(막차) 30분(배차시간) 1:00(소요시간)
 +
:* 광주 → 구례 06:15(첫차) 20:10(막차) 20분(배차시간) 1:30(소요시간)
 +
:* 여수 → 구례 06:05(첫차) 18:40(막차) 13회/1일(배차시간) 2:00(소요시간)
 +
* 시내버스
 +
:* 구례 → 화엄사 06:40(첫차) 20:00(막차) 60분(배차시간) 0:15(소요시간)
  
;입장료
+
;구례 시외버스터미널 안내전화 : 061)780-2731
* 무료
 
* 주차장 : 대형버스 15대 정도 주차요금 무료
 
  
== 교통안내 ==
+
=== 항공편 ===
;버스
+
* 서울 → 광주 12회 50분
* 고산 운주 화암사 (군내버스 1일5회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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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수 10회 50분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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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진주 09회 60분
* 전주(17번 국도) 봉동 고산 →경천 용복주유소(우측길) 구제마을삼거리(좌측길) →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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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시외버스터미널 안내전화 : 061)780-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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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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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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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전→ 전주→남원, 춘향터널 지나 우측 순천행 19번 산업국도 →밤재터널→20.2km→ 구례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하여 냉천 삼거리에서 좌회전(18번 국도)→ 3.5km→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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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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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해고속도로 →120km → 하동 → 19번 국도 →12km→ 하동읍 →19번 국도 → 34.5km → 냉천 삼거리에서 우회전 →18번 국도→ 3.5km →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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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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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호남고속도로 → 곡성 → 9.5km→곡성읍→ 17번 국도 →15km 압록 17번 국도 →8km→ 구례 구역 →18번 국도 5.5km 구례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하여 냉천 삼거리에서 좌회전(18번 국도) → 3.5km →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 지도 ==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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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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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 〈[https://ko.wikipedia.org/wiki/%ED%99%94%EC%95%94%EC%82%AC_(%EC%A0%84%EB%B6%81_%EC%99%84%EC%A3%BC%EA%B5%B0) 화암사 (전북 완주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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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홈페이지 - http://hwaeomsa.or.kr/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3160000,35&pageNo=1_1_1_0 완주 화암사 극락전 (完州 花巖寺 極樂殿)]〉, 《국가문화유산포털》
+
* 〈[https://ko.wikipedia.org/wiki/%ED%99%94%EC%97%84%EC%82%AC 화엄사]〉, 《위키백과》
* 〈[https://www.wanju.go.kr/tour/index.wanju?menuCd=DOM_000000801001001009 완주 9경 > 7경]〉, 《완주군 문화관광》
+
* 〈[https://namu.wiki/w/%ED%99%94%EC%97%84%EC%82%AC 화엄사]〉, 《나무위키》
* 〈[http://wanju.grandculture.net/wanju/index/GC07000902?category=%EC%A7%80%EB%AA%85%2F%EA%B8%B0%EA%B4%80%EB%AA%85&depth=2&name=A~Z%2C0~9&page=181&search=%EC%99%84%EC%A3%BC%20%ED%99%94%EC%95%94%EC%82%AC%20%EC%9A%B0%ED%99%94%EB%A3%A8 화암사]〉, 《디지털완주문화대전》
+
* 〈[https://www.gurye.go.kr/tour/detail.do?tourId=TOUR_0000000046&menuNo=101001007000 관광명소 > 주요관광지 > 화엄사]〉, 《구례여행》
* 〈[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422 국보와 보물이 겨루고 있는, 완주 화암사 우화루]〉, 《지역N문화》
+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f7e763b3-7616-4bb2-b85d-5c630977c374 화엄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Type=R&thisPage=1&bbIdx=4363&searchField=&searchText= 친정집 같은 절집 - 완주 화암사]〉, 《문화유산채널》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333605050000 사적 구례 화엄사 (求禮 華嚴寺)]〉, 《국가문화유산포털》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2ba4763b-a40c-45fa-bc2e-e940382eb566 화암사(완주)]〉, 《대한민국 구석구석》
+
*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552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세계 구례 화엄사]〉, 《불교신문》, 2021-09-01
* 김애진 여행작가,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b502a162-237a-4d8a-89a9-00d864fd0bc4 산속 보물을 찾아서, 완주 화암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4-12-17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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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 (화) 12:04 기준 최신판

구례 화엄사 일원 전경
구례 화엄사일주문
구례 화엄사 각황전
구례 화엄사-각황전 내부
구례 화엄사 대웅전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국보 35호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구례 화엄사 보제루(도유형문화재 제49호)
구례 화엄사 사자탑

화엄사(華嚴寺)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전국의 사찰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거대한 중층 금당으로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으로 유명하다.

개요[편집]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하여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1년)에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

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절내에서는 동.서 두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보이며 동측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경내 건물중 각황전은 국보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이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 뜰에 서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보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각황전 왼편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국보이다. 각황전 내부 후편에 위치하고 있는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로 1997년도에 지정되었다.

화엄사 경내 보물 가운데서도 대웅전 양편에 서있는 5층탑은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또한 이곳의 대웅전은(보물)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훌륭한 경관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소와 절경이 산재해 있다. 한편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19번국도변(약 35㎞) 에는 가로수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매년 4월 벚꽃이 만개할 때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인근에는 섬진강매화마을, 고소성 군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쌍계사등 많은 관광지가 있어 수많은 상춘객이 몰리는 곳이다.

역사[편집]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의'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법사가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 7층탑 · 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다.'

《봉성지》(鳳城志)에 따르면, 문무왕 때 의상국사가 왕명을 받아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절에 보관하였다.'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이 다시 증축했다.

고려시대에도 중수가 잇따랐다. 943년(고려 태조 26년)에 도선의 유지에 따라 오백선찰을 먼저 건립하고 뒤에 삼천팔백사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찰 중 화엄사가 제일 먼저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광종대, 문종대, 인종대, 충숙왕대에 걸쳐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가 더 있었다.

화엄사에는 벽(壁)을 청석(靑石)으로 두른 전각이 있었고 이 청석에 화엄경이 조각되어 장육전(丈六殿, 부처의 키가 6척이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이름)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년)에 불타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지금도 간혹 청석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보인다고 한다. 벽암선사가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36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재건하였고, 재건 후에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그외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숙종 27년(1701년)에 화엄사 중건을 완성하고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

중요 건물은 대웅전 이외에 각황전(覺皇殿) · 보제루(普濟樓) · 명부전(冥府殿) · 원통전(圓通殿) · 영산전(靈山殿) · 응향각(凝香閣) · 적묵당(寂默堂) · 금강문(金剛門) · 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

가람 배치[편집]

절 앞쪽에 1칸 1호의 일주문이 있어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라는 편액이, 다음에 금강역사 · 문수보살 · 보현보살의 상을 안치한 금강문이, 조금 서쪽에는 사천왕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이 있다.

화엄사가 일반적인 다른 사찰들과 차이점을 든다면, 보통 절이라면 탑이나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이기 마련인데, 이 화엄사는 각황전이 압도적으로 크다. 물론 각황전 역시 부처상이 있는 금당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크기 차이 때문에 가람의 배치가 지나치게 비대칭적으로 변해 좀 이상해졌다. 게다가 각황전 앞의 석등과 그 아래의 서 오층석탑은 삐뚤게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앞 아래에 있는 동 오층석탑 역시 정 중앙에 있지를 않고 삐뚤게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 더 이상한 점은, 중문(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과 각황전을 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보제루를 여느 절과 달리 밑으로 못 지나가고 동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단한 의도가 숨어있다.

절의 방문자가 보제루를 오른쪽으로 멀리 돌게되면 각황전은 멀어지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가깝다. 그렇게 되면, 원근감에 의해 각황전과 대웅전의 크기 차이가 많이 줄어든다! 또한 보제루를 돌아 삐뚤게 배치되어 있는 각황전과 대웅전, 탑과 석등 전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그 순간 마치 일직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서 오층석탑-석등-각황전이 일렬로 놓이고, 동 오층석탑과 대웅전이 일렬로 놓이게 되는 탁월한 시각적 배치를 보여준다.

딸린 암자[편집]

화엄사가 가장 융성했던 신라 경덕왕 때엔 화엄사에 81 암자가 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거의 없어지고 근세까지 10여 개의 암자만이 남았다가 한국 전쟁과 조선인민유격대 토벌 작전 탓에 그마저도 거의 퇴락해버렸다. 그래서 현재는 구층암, 금정암, 지장암 등 세 암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화엄사 가람배치도

중요 문화재[편집]

문화재로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도 전하는 부속 건물들로서 이들은 모두 신라 시대에 속하는데 거의가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는 어느 사찰보다도 풍성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깨달은 황제가 산다는 뜻의 각황전(국보 제67호)이다. 조선 중후기인 숙종 때 지어진 건물이지만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임금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 다음 큰 규모로 지어진 법당이다. 본래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소실된 곳에 복원하면서 숙종 임금이 현판을 <각황전>이라 사액해서 각황전으로 부른다.

각황전 앞에는 각황전 규모에 걸맞은 거대한 석등(국보 제12호)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높이가 무려 6.4미터, 직경이 2.8미터에 달한다. 각황전 왼쪽 뒤로 돌아가면 탑전이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이형탑 가운데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탑으로 알려졌다. 사자 네 마리가 기단부를 대신해서 탑 전체를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안에는 연기조사의 출가한 어머니가 새겨져 있고 탑 건너편 석등 아래에는 효심 깊었던 연기조사가 무릎을 꿇은 채 차공양을 올리는 모양을 띠고 있다.

이 밖에도 화엄사에 소장되어 있는 영산회괘불탱도 국보 제301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동오층 석탑(보물 제132호), 서오층 석탑(보물 제133호), 대웅전(보물 제299호),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 300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서오층 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등이 있다.

또한,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와 부용영관 선사가 이 매화나무를 보고 시를 읊었다 해서 일명 부용매로 불리는 화엄사 매화나무(천연기념물 제485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국보[편집]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1962년에, 화엄사영산회괴불탱은 1997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각황전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은 국보 제67호이다. 석가모니 · 아미타불 · 약사불의 삼존불과 법화경의 사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양왕보살, 관음보살의 상을 안치한 화엄사의 중심 법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의 자리에 숙종 25년(1699년)부터 28년(1702년)까지 새로 지었다. 법당을 지은 후 숙종이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사액하였다. 각황전의 사액에는 거지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하였다는 민간의 설화가 전한다. 하지만 숙종에겐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실재의 역사는 아니다.

조선시대 중기 및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찰 건물로, 규모에 있어서도 근정전 다음 가는 큰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조선시대 양식의 웅대한 중층불전으로, 내부에는 청판을 깔고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

각황전 앞 석등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華嚴寺覺皇殿前石燈)은 국보 제12호이다. 각황전 바로 앞에 있으며 높이 6.4미터, 직경 2.8미터의 큰 석등이다. 기석(基石)은 8각, 간석(竿石)은 병 모양으로 중간에 띠를 둘렀고, 각 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신라 시대 불교 전성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사사자삼층석탑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은 국보 제35호이다. 높이 7.17미터. 하단의 각면에 3구씩 도합 12구의 천인상을 양각으로 표현했고, 상성기단의 네 구석에는 앉아 있는 암수사자를 기둥처럼 세우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스님상을 두어 위의 무게를 받게 하였다. 탑신은 기단에 비해 비율이 작은 느낌이 드나 층급(層級, 받침)은 5단이고 조층에는 각 면마다 문비(門扉)의 문양이 새겨 있으며 그 양 옆에서 인왕상(仁王像)이 배치되어 섬세한 효과를 낸다. 착상이 기발하고 특이한 형식을 갖춘 점에서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룬다.

영산회괘불탱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은 국보 제301호이다. 가로 7.76 c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 보현 보살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십대제자, 2구의 분신불, 십장제불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군집도 형식이다.사천왕 가운데 2구는 상단에 나머지 2구는 하단에 그려 사방을 수호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보물[편집]

동 오층석탑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은 보물 제132호이다. 높이 6.4미터, 대석(臺石) 1변의 길이 2.8미터이며, 대웅전 아래 광장에 동·서 두 탑이 서로 마주 섰는데, 동 오층석탑은 서 오층석탑에 비하면 기교가 없다.

서 오층석탑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이다. 높이 6미터이며, 2층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하단 4면에 각 3구의 십이지상을, 상단 각 면에는 사천왕·인왕 등의 상을 2구씩 각각 새겼다. 탑신은 비교적 좁고, 처마 끝이 나와 있는 것 등 웅건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299호이다. 건평 35평, 높이 35자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 : 정유재란 때)에 불타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벽암선사가 중건한 것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다. 또 내부의 불화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

원통전 앞 사자탑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은 보물 제300호이다. 높이 10.3자, 폭 6.3자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다. 평방 4각형으로 아래에는 사천왕(四天王)을 조각하였으며, 가운데에는 4마리의 사자가 감로수(甘露水)를 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되었다.

화엄석경

구례화엄사화엄석경은 보물 제1040호이다. 엷은 청색 돌에 화엄경을 새긴 것이다.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경각을 세우고 비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장육전이 소실되면서 함께 부서졌다. 지금은 약 9천여 개의 파편이 발견되어 보관 중이다.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하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기타 보물
  •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천연기념물[편집]

  •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 천연기념물 제38호
  • 구례 화엄사 매화: 천연기념물 제485호

이용안내[편집]

  • 연락처 : 061-783-7600(화엄사 종무소)
  • 이용요금
-개인
어른 4,000원 / 청소년·학생 2,000원 / 어린이 1,500원
-단체(30인 이상)
어른 4,000원 / 청소년·학생 1,600원 / 어린이 1,200원
  • 개방시간 : 연중무휴

교통안내[편집]

대중교통[편집]

  • 시외버스
  • 서울(남부터미널) → 구례 06:40(첫차) 22:00(막차) 2시간(배차시간) 3:10(소요시간)
  • 남원 → 화엄사 07:00(첫차) 19:10(막차) 30분(배차시간) 1:00(소요시간)
  • 광주 → 구례 06:15(첫차) 20:10(막차) 20분(배차시간) 1:30(소요시간)
  • 여수 → 구례 06:05(첫차) 18:40(막차) 13회/1일(배차시간) 2:00(소요시간)
  • 시내버스
  • 구례 → 화엄사 06:40(첫차) 20:00(막차) 60분(배차시간) 0:15(소요시간)
구례 시외버스터미널 안내전화 
061)780-2731

항공편[편집]

  • 서울 → 광주 12회 50분
  • 서울 → 여수 10회 50분
  • 서울 → 진주 09회 60분
구례 시외버스터미널 안내전화 
061)780-2731

자가용[편집]

  • 서울방면

서울→ 대전→ 전주→남원, 춘향터널 지나 우측 순천행 19번 산업국도 →밤재터널→20.2km→ 구례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하여 냉천 삼거리에서 좌회전(18번 국도)→ 3.5km→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 부산방면

부산→ 남해고속도로 →120km → 하동 → 19번 국도 →12km→ 하동읍 →19번 국도 → 34.5km → 냉천 삼거리에서 우회전 →18번 국도→ 3.5km →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 광주방면

광주 → 호남고속도로 → 곡성 → 9.5km→곡성읍→ 17번 국도 →15km → 압록 → 17번 국도 →8km→ 구례 구역 →18번 국도 → 5.5km → 구례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하여 냉천 삼거리에서 좌회전(18번 국도) → 3.5km →마광삼거리에서 직진 →2.1km→화엄사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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