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독립기념관

해시넷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독립기념관
불굴의 한국인 상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Independence Hall of Korea)은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자 역사박물관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남화리 230)에 있다.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며, 국민모금을 통하여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1994년 1월 18일 편의시설 운영 및 용역관리를 목적으로 독립기념관 내에 자회사 ㈜독립기념관사업단을 설립했으며, 2011년 독립기념관사업단은 ㈜한빛씨에스로 상호명을 변경하였다.

개요

독립기념관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독립기념관을 설립하여 외침(外侵)을 극복(克服)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법인격) 독립기념관은 법인으로 한다.
제22조(「민법」의 준용) 독립기념관에 관하여 이 법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것 외에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대한민국의 박물관으로 이를 운영하는 국가보훈처 산하 공공기관(준정부기관) 역시 '독립기념관'이다. 겨레의 탑과 불굴의 한국인 상이 박물관의 상징이며, 이 박물관이 바로 천안시의 랜드마크이다.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 운동이 주요 주제이다.

독립기념관은 7개의 전시관, 실내외 컨벤션홀, 소규모 회의장소 등을 보유하고 있어 애국 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배우며 국제회의, 다양한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이색 회의 명소로 평가받고 있다.

건립배경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이 한국-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내용을 일본 측에 유리한 형태로 수정하면서 역사 왜곡 이슈가 터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문부성의 일방적인 수정에 항의하는 교과서 집필진의 항의가 있었고, 일본 내 여론도 문부성 비판으로 흘러가면서 한국 내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한국 내 여론은 독립운동과 같은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알려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해졌고, 500여억원의 국민성금을 기초로 독립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독립기념관 등 80년대 건축된 대형 건축물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시각이 있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는 기치 아래 문화공보부에서는 대형 복합 문화 공간의 거대 프로젝트를 전국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따라서 독립기념관, 중앙청 건물의 국립중앙박물관 전환,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이 대형 프로젝트로 추진되어 건립되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으로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손님들의 눈높이에 맞는 문화 시설을 만들려는 것이 당시의 목표였다.

독립기념관이 천안 목천에 들어선 이유는 이 일대가 유관순, 이동녕, 조병옥 등 여러 독립지사들이 태어나 활동한 곳이기도 하고, 1970년대 말 박정희가 행정수도 이전지 중 하나로 고려했던 곳(이른바 '천원지구')으로 교통과 지세가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설립 발기인 선정부터 말썽이 일었다. 이들은 부랴부랴 '독립기념관 건립사업 전국추진위원회'를 구성 후 발기인 명단을 발표했으나, 이들 중 수십 명이 친일부역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결국 마지못해 이들 이름을 빼고 다시 위원회를 꾸렸다.

기능

  •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대한 역사자료의 수집, 관리, 전시, 조사, 연구
  • 올바른 국가관 정립을 위한 국민에 대한 역사 교육, 홍보
  • 기념관자료에 관한 홍보와 이에 관한 각종 간행물의 제작 및 배포
  • 기념관 시설의 관리 및 확충 등의 운영재원 조달을 위한 사업

연혁

  • 1982년 10월 5일 :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설립
  • 1983년 08월 15일 : 독립기념관 기공
  • 1986년 05월 09일 : 독립기념관법 공포시행
  • 1986년 08월 04일 : 겨레의 집 화재로 인해 준공 무기한 연기
  • 1987년 08월 15일 : 제42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준공, 개관
  • 2005년 05월 18일 : 소관부처 이관 (문화관광부 → 국가보훈처)
  • 2008년 01월 01일 : 관람료 무료화
  • 2008년 10월 07일 : 밝은누리관(교육관) 개관
  • 2010년 08월 12일 : 기증자료전시관 개관
  • 2011년 08월 : 누적 관람객 4,000만명 돌파
  • 2015년 09월 09일 : 다목적 체험교육관(겨레누리관) 준공
  • 2017년 07월 01일 : 5,000만 번째 관람객 입장
  • 2017년 08월 15일 : 제4관 평화누리관 재개관
  • 2017년 08월 15일 : 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
  • 2017년 08월 30일 : 겨레의 집 리모델링 공사 준공 및 국민 대개방
  • 2019년 03월 01일 : 제3관 겨레의함성 재개관
  • 2019년 03월 01일 : 체험관 함께하는독립운동 재개관
  • 2019년 12월 20일 : 국내 최초 MR독립영상관 준공
  • 2020년 03월 01일 : 제2관 겨레의시련 재개관

전시와 시설

제1전시관
신기전
제4관 내부
임시정부 요인들
입체영상관
겨레의 큰마당
태극기한마당
105인 층계
추모의 자리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통일염원의 동산
독립기념관 광개토대왕비
밀레니엄 숲
백련못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전시관

모두 7개이며, 대공간 · 소공간 · 특별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 제1전시관 겨레의뿌리 : 구석기 문화가 시작된 이후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수많은 외부의 침략에도 단결된 힘으로 슬기롭게 극복하여 이 땅을 지켜왔다. 제1관 '겨레의뿌리'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인 186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불굴의 민족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제2전시관 겨레의시련  : 제2관 '겨레의시련'은 근대적인 자주 독립 국가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좌절된 후 이어진 일제의 식민 지배 실상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도 계속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 제3전시관 겨레의함성 : 제3관 '겨레의함성'은 3·1운동과 대중투쟁에 참여했던 민중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일제 식민지배 아래에서 일어난 우리 겨레의 1919년 3·1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국내를 넘어 국외 한인사회까지 울려 퍼졌다.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던 민중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독립운동의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3·1운동 이후 대중투쟁과 같은 다양한 모습의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 제4전시관 평화누리 : 제4관 '평화누리'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지향한 독립운동의 참뜻을 공감하고 나누는 공간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미래까지 계승되어야 하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 제5전시관 나라되찾기 : 제5관 '나라되찾기'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독립전쟁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중국 만주 지역 등을 근거로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의 활동, 개인 또는 단체를 이루어 일제의 침략기관과 주요 인물을 처단한 의열 투쟁, 그리고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다.
  • 제6전시관 새로운나라 : 제6관 '새로운나라'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새롭게 세운 국가이고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살펴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경험들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졌음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 특별기획전시실 : 독립기념관의 특별전시가 이루어지는 전시관이다.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의 상징이자 중심 기념 홀로, 수덕사 대웅전을 모방해 설계했다. 길이 126m, 폭 68m, 높이 45m 에 이르는 규모로, '동양최대의 기와집'으로 설명된다. 전통 건축물의 맞배지붕양식을 본따 설계되었으며, 기와는 구리로 제작되었다. 현판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 선생이 썼으며, 시공은 대림산업이 맡았다.

1986년, 원래 개관 예정이었던 8월 15일을 불과 열흘 남겨둔 8월 4일에 화재가 발생해 본관이 불타 개관이 무기한 연기된 일이 있었다. 부실한 전기공사에 의한 스파크가 원인이었는데, 지붕 하부가 가연성 높은 강화플라스틱(FRP) 자재에 송판, 루핑 등으로 덮여 있었으며 전기공사를 진행하던 기능공이 무자격자라 380V짜리 선을 110V선에 연결한 게 화근이었다. 또 지붕 높이에 맞는 소방 시설 또한 준비되어 있지 않아 화재의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소화전은 있어봤자 물줄기는 30cm밖에 안 뻗었고 준공 전이라 자체소방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관할서인 천안소방서는 지리상 13km나 멀리 있었고, 건물 앞은 계단이 가로막고 있어서 화재 진압차량이 오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부실공사 의혹이 불거져서 여러 사람이 쇠고랑을 찼다. 정권에서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앞당기고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또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당시 중동건설 붐이 꺼지면서 건설경기 불황을 겪었던 터라 최저가 위주로 덤핑을 하면서 현대전업에 싼 값으로 하도급을 줬고, 현대전업 측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기능공 6명 중 4명을 무자격자로 한 게 원인이기도 했다.

이로써 시공사인 대림산업 측이 일간지를 통해 사과광고를 내고 복구비 전액을 자체 부담한 후, 내연재로 재공사하여 1년 뒤인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했다.

이 건축물은 건축계에서 논란의 대상인데, 너무 직설적으로 한옥의 형태를 한 현대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기능과 상관없이 과거 건축양식을 콘크리트로 모방했다는 비판과 건물의 성격이나 역사를 생각한 타당한 전통 계승의 결과물이란 옹호가 대립하고 있다. 건축가들의 의견이 반영된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과 같은 리서치에서도 목록에 오를 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전주시청과 같이 자주 거론되는 건물이다.

개관 이후부터 광복절 기념식장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1987~1994년, 1996~1997년, 1999~2004년, 2019년의 광복절 기념식이 여기서 열렸다.

겨레의 큰마당

겨레의 집 앞 광장으로 폭 222m, 길이 258m, 면적은 약 38,535㎡이다. 기념행사나 열린 음악회같이 수만 명이 모이는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다. 중앙에는 약 5,000㎡면적의 화강판석이 포장되어 있고, 좌·우측으로 온양판석과 잔디마감으로 되어 있다.

입체영상관

대한민국 근대사에 관한 4D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통일염원의 동산

평화 통일과 그 의지를 후세에 전할 교육장으로, 국민의 통일 염원을 벽돌에 새겨 후세에 영구히 보존하고자 국민참여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

겨레의 탑

민족의 비상을 표현하고 있는 겨레의 탑은 막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새의 날개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양손과 같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영원 불멸의 민족기상을 표상하고 민족의 자주·자립을 향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전·후면에 무궁화와 태극의 약동하는 부조가 있고, 탑 내부에는 청룡·백호·주작·현무의 4신도를 상징화한 모자이크 조각이 4면을 장식하고 있다. 바닥에는 화강석으로 국토가 그려져 있고, 황동주물관 24괘로 방향을 표시하였다. 높이가 51m인 대형 조형물이다.

105인 층계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 오르는 계단으로 105개로 되어 있으며 이는 일제의 애국지사 탄압사건인 105인 사건을 상징한다. 105인 사건은 1911년 일본총독부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105인의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가둔 사건으로 애국계몽운동 시기의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가 해체되는 원인이 되었다.

불굴의 한국인 상

겨레의 집 내부 대형홀 중앙에 위치하며, 불굴의 독립정신과 강인한 한국인상을 상징하는 환조이다. 불굴의 한국인상은 한민족의 기상을 담은 거대한 조각상으로 조각가 김영중(1926~2005)이 만들었다. 태극기를 들고 앞을 가리키는 인물을 필두로 여러 인물들이 그와 함께하는 형태의 군상인데, 온 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열어주신 순국선열들의 얼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추모의 자리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겨레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는 공간인 추모의 자리는 독립기념관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폭 105m, 높이 3∼7m의 크기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벽부조는 민족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고 가운데는 우리 전통적인 한옥의 지붕선을 새롭게 응용한 돌제단과 만물의 조화와 화생함을 의미하는 태극홈에서 끊임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우리 선조들이 못다 이룬 한 맺힌 울분과 맑고 깨끗한 민족정신 또는 혼 그리고 우리 민족의 근원을 상징하는 분수가 있으며, 중앙부 태극의 물과 함께 물과 불이 지닌 생명의 근원과 음양으로 상징되는데 물이 민족의 탄생을 나타내는 소재라면 불은 영원불멸의 민족정신과 애국선열들의 승화된 민족자존의 정신을 표현한 봉화대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일제는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압으로 빼앗은 후 식민통치기구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 후 남산 왜성대에 설치한 한국통감부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1926년 경복궁 건물을 일부 헐고 그 자리에 (현재의 광화문) 조선총독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패망할 때까지 19년간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이 건물을 청사로 활용하였다. 광복 후 조선총독부 건물은 미군정청, 대한민국 정부 청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 잔재의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하여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철거 부재를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는 첨탑을 지하 5m 깊이에 반 매장하여 최대한 홀대하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독립기념관의 주 건물인 겨레의집 서쪽, 즉 해가 지는 위치에 조성함으로써 일제 식민통치의 몰락과 함께 식민잔재 극복 및 청산을 강조하였다.

통일염원의 동산

1990년 각계의 의견이 모아져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1991년 광복절에 기공식을 올리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광복절에 준공되었다. 겨레의 집 동남방 580m 지점 9,917㎡부지위에 원호를 그리는 무지개 형상의 통일염원의 탑을 세우고 그 중심에 통일의 종을 설치하여 빛의 형상과 종의 소리로 통일실현 의지를 담고 민족공동체로의 합일을 이루는 종합 조형물을 구성하였으며 주변에 통일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를 벽돌에 새겨 쌓아가는 국민참여의 장을 마련하여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동산으로 조성하였다.(국민 참여의 장 참여안내 : 041-560-0353)

광개토대왕릉비 재현비

현재 중국에 위치하게 된 광개토대왕릉비를 재현했다. 제1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복제비' 혹은 '모형비', '재현비'로 논란이 되고 있으나설명문에는 '재현비'라고 되어 있다.

C-47수송기 전시장

C-47 수송기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 수송기로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23일에 김구 주석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에서 환국할 때 탑승한 기종이다. 수송기 외관에는 한국광복군의 독립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광복군 휘장과 한국광복군의 약자인 K·I·A(Korea Independence Army)을 새겨놓았다. 전시된 비행기는 백범김구재단에서 기증한 것으로 2016년 4월부터 밝은누리관 앞 잔디광장에 전시하고 있으며, 삼일절, 어린이 날, 광복절에는 탑승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C-47 수송기는 길이 19.43m, 높이 5.8m, 날개폭 29.11m, 자체중량 8,226kg, 최대속도 365km/h, 순항속도 274km/h, 항속거리 2,575km, 상승고도 8,050m이며 무장병력 28명 또는 2,722kg의 물자를 탑재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일본의 한국역사 왜곡 및 중국정부의 동북공정에 따른 우리 고대사의 왜곡·날조에 대응하고 자랑스러운 고구려인의 기상을 계승하고자 겨레의 큰마당에 광개토대왕릉비를 재현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원형과 같은 재질, 형태, 글자로 제작되었다. 화강암의 일종인 응회암 재질이며, 높이 6.39m, 가로 폭 2m, 세로 폭 1.46m, 무게 38톤이다. 재현비에 새긴 글자체는 타이완 중앙연구원과 중국 베이징대학 소장본인 정탁본(精拓本)을 모본으로 삼았고, 징과 망치를 이용하여 글자를 새겼다.

삼학사비 복제비

삼학사의 충절을 기릴 목적으로 청 태종이 세웠다가 소실된 뒤 1935년 만주 동포들이 재건립했으나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 때 파손된 비석인 삼학사비를 재현했다.

북관대첩비 복제비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6년 3월 1일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리(옛 길주)로 반환한 뒤 복제해 세웠다.

밀레니엄 숲

21세기를 맞아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2000년 4월 5일에 기공식을 하여 2003년에 조성사업을 완료하였다. 한반도 모형으로 조성된 밀레니엄 숲은 약 8ha의 면적에 시·도별 상징수목 45종 23,696그루의 나무와 32종 14,200본의 우리 꽃이 심어져 있으며, 백두대간에 420미터의 철도레일을 설치하고 통일열차를 전시하고 있다.

태극기한마당

민족의 독립정신과 자주의식을 계승하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지며 광복 60년을 상징하고자 태극기 815기를 약 2,314㎡면적에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한마당"을 조성하였다.

백련못

약 26,446㎡의 면적에 50,000톤이 담수되어 있는 이 연못의 물은 흑성산 산정으로부터 개수로를 통하여 연못으로 유입되도록 하였으며, 외곽 호안은 지형의 연속성을 살려 완만하게 토사처리를 하면서 자연석을 배치하여 녹지와 나무그늘을 만들어 관람객이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솔숲쉼터

독립기념관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잔디 광장이다.

통일의 길

겨레의 집, 전시관, 백련못을 둘러싸고 있는 통일의 길은 약 2km로 태극열차와 태극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3.1전시상

'겨레의 함성'이라 이름 붙은 제4전시관 '함성의 광장' 중심에 있는 청동 조각상.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흰색 페인트로 도색되어 논란이 되었다.

단풍나무 숲길

경내 조선총독부철거부재전시공원에서 시작하여 통일염원의 동산 입구까지 약 4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는 단풍나무 길로, 폭 4m의 포장길 좌우에 2,000주의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다. 단풍나무 숲길을 걷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내외며, 특히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곳곳에 터널을 이루고 있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무궁화 테마공원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면적 50,000㎡의 한반도 형태의 부지로 조성되었고 65개 품종의 3319주의 무궁화를 만날 수 있다. 무궁화 정원, 무궁화 테마길, 놀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거북선

제1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서대문형무소

제2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민중의 소리

제3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태화관

제4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조선총독부

겨레의 집 뒤에 올라가다보면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뒤 버려진 것이 있다.

1910년 서울 경복궁 (景福宮) 앞뜰에 있던 건축물을 경복궁 복원사업을 실시해 철거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독립기념관에 버려지게 되었다.

독립군 체험학교

독립군 양성 대표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테마로 조성된 체험교육장으로 크게 교실과 야외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실은 전용 교육장으로 외부는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서간도 지역 가옥형식을 고려하여 고벽돌과 한국식기와로 연출하고 내부는 신흥무관학교 의식주 체험장을 중심으로 강당, 행정실, 교구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체험장은 독립군의 훈련, 전투, 승리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 캠핑장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독립기념관 캠핑장은 국민들의 건전한 여가증진을 위해 2019년 자동차야영장업으로 인가받은 시설로 총면적 100,539㎡이다. 캠핑장은 대한ZONE(카라반구역), 독립ZONE, 만세ZONE(숲속구역), 통일(가,나)ZONE 총 104개 사이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사이트에서 전기 사용이 가능하다. 캠핑장 주요시설은 개수대, 화장실, 샤워실, 크린하우스(분리수거함), 역사의길(산책로) 등으로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밝은누리관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우측(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상 2층 규모의 교육관으로, 1층에는 강당(120명 수용), 독도학교 교실, 강의실, 2층에는 체험학습실 등 각종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강당, 강의실 대관 가능 (041-560-0353)

겨레누리관

독립기념관 주차장 우측(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상 4층 규모의 다목적 체험교육관이다. 1층에는 500명 수용 가능한 규모의 컨벤션홀이 있으며, 2~4층에는 독립기념관의 행정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컨벤션홀 대관 가능 (041-560-035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국내외 독립운동사적지 조사연구 및 독립운동 관련자료 조사 및 수집, 독립운동 관련 국내·국제 공동학술회의 개최, 일제침략사 및 일본의 역사왜곡 대응연구 및 국제학술회의 개최, 각종 단행본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다.

관람안내

  • 입장료 : 무료
  • 관람시간
  • 하절기(3월~10월) : 입장시간 09:30~17:00 / 관람시간 09:30~18:00
  • 동절기(11월~2월) : 입장시간 09:30~16:00 / 관람시간 09:30~17:00
  • 정기 휴관일 :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개관). 단, 상설전시관 외 야외전시, 쉼터 등은 개방.
예약안내
  • 전시관 해설, 전시관 활동지 이용, MR 독립영상관, 특별기획전시 관람 등 예약 〈여기클릭
  • 캠핑장, 솔숲쉼터, 강당(밝은누리관 1층), 특별기획 전시실Ⅰ, 특별기획 전시실Ⅱ, 컨벤션홀(겨레누리관 1층) 예약 및 대관안내는 〈여기클릭

교통안내

기차/고속철도
  • 천안역에서 버스 이용(12km), 약 25분 소요
  • KTX : 천안아산역에서 택시이용 약 20분 소요, 버스이용시 환승필요
버스
  • 고속버스 : 천안종합터미널 앞에서 시내버스 이용 약 30분 소요
  • 시외버스 : 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이용 약 20분 소요
승용차

경부 고속도로 목천(독립기념관) 나들목에서 2km, 천안나들목에서 국도 21호 이용 시 12km

독립기념관 경유 버스안내
  • 시외버스 : 천안 ↔ 진천(천안 ↔ 독립기념관 ↔ 목천 ↔ 병천 ↔ 동면 ↔ 덕성리 ↔ 사석 ↔ 진천, 1시간 간격)
  • 시내버스 : 노선번호 381번, 382번, 383번, 390번, 391번, 400번(10분 간격), 402번

기념관 내 버스 진입 시간은 오전 8시 ~ 19시 (8시 이전, 19시 이후에는 기념관 주차장 승하차장에 정차하지 않는다.)

주차 안내

약 14만m²의 주차공원에서 주차와 휴식을 함께 할 수 있다. 주차 관제 시스템 설치로 관람객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운영·관리하고 있다.

  • 동시 주차 : 1,354대
  • 문의전화 : 041-560-0764
주차요금
  • 소형 2,000원(1일 기준)
  • 대형 3,000원(1일 기준)
  • 감면 : 1,000원. 장애인, 경차, 하이브리드카, 저공해차, 병역이행 명문가
  • 면제 : 국가유공자, 국가유공자 유족증 소지자
  • 매주 월요일 주차장 무료 개방 (공휴일 및 특별 개관 시 유료)
※ 도로교통법 제2조 22호의 규정에 의한 긴급자동차는 주차료 면제
※ 문의 : 041-560-0764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독립기념관 문서는 한국관광지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