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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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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청

강화군(江華郡)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북서부의 군이다.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 섬으로만 이루어진 지역이다. 군청 소재지는 강화읍이고, 행정구역은 1 12면이다.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행정구역 상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인천광역시와는 직접적인 육로가 없고, 육지와의 교통로 두 곳은 모두 경기도 김포시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실질 월경지이다. 이 때문에 경기도로 환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존한다.[1]

개요[편집]

강화군은 강화도를 비롯한 8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28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군으로서 인천광역시의 북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5˚ 57'~126˚ 32',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34'~37˚ 49'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염 하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김포시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서해에 면하며, 남쪽으로는 경기만을 사이에 두고 옹진군 및 중구 영종도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한강 하류와 강화만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한다. 군의 동쪽 끝은 길상면 황산도, 서쪽 끝은 서도면 석도, 남쪽 끝은 길상면 동검리, 북쪽 끝은 양사면 북성리이며, 동서 간 거리는 19㎞, 남북 간 거리는 27㎞, 해안선 길이는 264.78㎞이다. 면적은 411.43㎢로 인천광역시 전체 면적의 약 39%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넓다. 행정구역은 1 12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동면이 전체 면적의 11.5%를 차지하여 가장 넓고 서도면이 전체 면적의 3.1%로 가장 좁다.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6만 9726명으로 인천광역시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7번째에 해당한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진달래, 나무는 감나무, 새는 저어새이다. 군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강화도의 대표적 역사 유적인 선사시대의 고인돌을 모티브로 하여 돌망치를 든 어린 원시인을 친근하게 형상화한 '강돌이'이다. 군청 소재지는 강화읍 관청리이다.[2][3]

자연환경[편집]

국토 공간상 한반도 중심부의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5 대 섬 중의 하나로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류를 경계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백군과 개풍군에 인접해 있다. 강화군을 중심으로 동쪽은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김포시가, 서쪽은 서해 바다, 그리고 남쪽은 해안의 대규모 갯벌을 지나 옹진군의 여러 섬 들과 인천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다. 지리학적 위치는 동경 128도 2분에서 128도 30분 사이와 북위 37도 31분에서 37도 48분 사이에 자리하고 9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강화의 지형지세는 타원형으로 남북은 해안까지 거리가 28km, 동서간 거리는 16km이며 해안선의 총연장은 247km이다. 본섬은 서해안의 한강 하구로 인해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와 분리되어 섬을 이루고 있고 비교적 산악이 많으나 지리상 노년기 상태에 있기 때문에 대체로 둥근 산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하부에 이를수록 경사가 완만해지는 형태를 나타내 일반적으로 평균 고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강화군은 사계절이 뚜렷하며 서해와 접해 있으면서도 강화도 북부에 한 해 해양성기후의 특징이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남부지역은 난류의 영향으로 내륙인 김포시 보다 겨울철에 기온이 높다. 연평균 기온은 11.7 °C 여름 기온은 비슷하나 강화도 겨울은 비교적 추운 편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333mm로서 우리나라 평균 강우량과 비슷하며 하천의 길이가 짧고 도서 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홍수의 피해가 적은 편이다. 바람의 주풍은 북서풍 계열의 바람이 불고 연평균 풍속은 2.0m/s 정도이다.

역사[편집]

하점면 장정리, 화도면 사기리와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수습되었고, 군 내의 여러 곳에서 신석기 유물이 채집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점면 부근리와 신삼리 등지에 분포해 있는 고인돌,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마니산의 참성단(塹城壇), 길상면에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해 쌓게 했다고 전하는 삼랑성(三郎城)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이후에도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이곳에 혈구 군을 설치했으나 757년(경덕왕 16) 신라가 이곳을 점령해 해구군이라 개칭했고, 790년(원성왕 6)혈구 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940년(태조 23) 강화로 개칭하고 현을 두었는데, 이때 비로소 강화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몽고의 제2차 침입 직전인 1232년(고종 19) 고려는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강도(江都)라 칭하고 몽고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다가 1270년(원종 11)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고려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주조, 팔만대장경의 조판, 상감청자의 제작 등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개경 환도 가 이루어지자 이에 반대하던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고려 조정과 몽고에 항쟁하다가 진도로 남하하였다. 이때 삼별초는 1,000여 척의 배에 각종 재물과 인질로 삼은 고관의 가족들을 싣고 진도로 남하해 항쟁을 계속하였다.

고려 말기에는 왜구가 자주 침입해 피해가 컸으며, 충렬왕 때에는 잠시 인주(仁州 : 현재의 인천)에 병합되었다가 1377년(우왕 3) 강화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을 두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일시 강화로 피난했다가 환도했는데, 이때 부윤을 다시 유수로 승격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김상용(金尙容) 등에게 명해 하여금 종묘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봉림대군·인평대군 등과 함께 강화로 피난하게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는 백관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싸우다가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남한산성을 열어서 청나라와 강화하였다.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뒤의 효종)은 청나라에서 돌아와 왕위에 오르자,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북벌계획을 추진할 때 그 일환으로 강화도에 진보를 설치하는 등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 작업은 숙종 때까지 이어져서 강화도에는 내성·외성·12진보·53돈대 등이 축조, 설치되어 이중 삼중의 요새화가 이루어졌다. 또 1678년(숙종 4) 강화 부윤이 진무사를 겸직하도록 하고 강화만 일대를 방어하는 오영(五營)을 통솔하게 하였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상륙, 강화성을 함락하고 약 1개월 동안 머무르다가 정족산성 전투(鼎足山城戰鬪)에서 양헌수(梁憲洙)에게 패퇴하자 강화도에서 철수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강화성이 함락될 때 전 병조판서 이시원(李是遠) 형제가 독약을 마시고 순절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던 미국 함대가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과 대안인 통진·덕포진(德浦鎭) 등의 포격을 받고 인천 방면으로 퇴각했다가 다시 북상해 초지진(草芝鎭)을 점령하였다. 초지진을 점령한 미국 해병대는 육로로 북상해 덕진진과 광성보를 함락시켰다.

광성보 전투에서는 어재연(魚在淵) 이하 모든 장병이 끝까지 싸우다가 중상자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였다. 이 두 양요를 거친 뒤 1874년에 강화도 동쪽 해안에 포대를 설치해 외침에 대비했으나, 이듬해에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이 일어나 초지진과 포대가 일본 군함의 포격을 받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1876년에는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는 일본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1896년에 강화부로 강등되었고, 1906년에는 다시 강화군으로 강등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喬桐郡)이 편입되었다.

1950년에 6·25전쟁으로 북한군이 침입하자 군민들이 특공대를 조직해 그들을 격퇴시켰는데, 강화읍 입구에는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전사한 19인의 영령을 추모하는 강화특공대 의적 비가 세워져 있다. 1962년 10월 1일 볼음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강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하점면 양오리가 송해면에 편입되었으며, 1987년 6월 25일에 강화읍 신문리 일부를 관청리에, 불은면 삼동암리 일부를 삼성리에, 불은면 신현리 일부를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또 1991년 8월 8일에는 화도면 장화리 일부를 내리에 편입시켰다.

1993년 9월 13일에는 불은면 덕성리 일부를 길상면 길직리에, 길상면 장흥리 일부와 길직리 일부를 불은면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이듬해에는 강화읍 대산리 일부를 송해면 신당리에, 송해면 신당리 일부를 강화읍 대산리에 편입시켰다. 1995년 3월 1일 군 전체가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1월 12일에는 송해면 양오리의 일부가 하점면 장정리로, 같은 해 4월 10일에는 하점면 망월리의 일부가 내가면 오상리에, 내가면 오상리와 구하리가 하점면 망월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오늘날 강화도에서는 강화문화제, 고인돌 축제, 참성단 축제 등을 마련하여 진행되고 있다. 2005년 12월 말 기준 562개소의 문화재 내지 사적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83개소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1990년대 이후 인천가톨릭대학교가 설립되었고,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가천 의과학대학교 등이 개교되어 교육도시로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개 (강화읍) 12개 (교동면·길상면·내가면·불은면·삼산면·서도면·선원면·송해 면·양도면·양사면·하점면·화도면) 1 출장소 188개 행정리 96개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4]

산업[편집]

  • 농업
    • 주민의 약 70%가 농업에 종사하며 주 작물이 쌀이다.
  • 수산업
    • 국가어항 : 어유정항
    • 지방어항 : 선두항, 주문항, 후포항, 정포항
    • 어촌정주어항 : 황산도항, 선두 4 리항, 분오리항, 더러미항, 건평항, 서두 물항, 초지항
  • 특산물
  • 화문석: 왕골을 건조하여 자리를 엮은 것으로 주로 가내 수공업 형태로 이루어진다. 1980년대에는 생산 수요가 크게 증가하여 농가 부수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나 현재는 수요의 감소로 일부 전문 생산자들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
  • 인삼: 20세기 초에 개성에서 재배기술이 도입되어 전파된 인삼은 그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한때는 전국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재배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다.
  • 순무: 강화에서만 생산되는 무로 19세기 프랑스로부터 전파되었다. 순무김치는 일반 무김치에 비하여 단맛이 도는 독특한 식품으로 타지에서 수요가 늘어 상품으로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교통[편집]

본래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해상 교통에 의존하다가 1970년 염하(강화해협)를 가로질러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왕복 2차로의 구강화 대교가 개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후 1997년 왕복 4차로의 강화대교가 새로 개통되면서 구강화 대교는 폐쇄되었고, 2002년 길상면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를 연결하는 강화 초지대교가 왕복 4차로로 개통되어 강화도와 김포반도 간의 도로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다. 2014년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 대교가 개통된 데 이어 2017년에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 대교가 개통됨으로써 강화군의 주요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다. 길상면에 딸린 동검도도 제방도로로 이어져 육지화하였다.

도로 교통은 국도 48호선이 강화군 북부의 양사면 인화리를 기점으로 하여 하점면·송해면·강화읍을 거쳐 강화대교를 가로질러 경기도 김포시와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까지 이어진다. 강화대교에서 하점면 신봉리 간의 약 14㎞에 걸친 강화 대로는 국도 48호선의 일부이다. 강화 초지대교와 연결되는 국가지원 지방도(국지도) 84호선은 강화군 북동부의 강화읍 갑곶리를 기점으로 하여 선원면·불은면·길상면과 경기·인천 지역을 경유하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갑곶리를 기점과 종점으로 하여 수십 개소의 진·보·돈대 등 국방 유적과 해안 경관지를 경유하는 해안순환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강화읍 남산리에는 청주시·광주광역시 방면의 시외버스를 운행하는 강화여객자동차 터미널이 있다.

주요 섬들이 육지와 연결됨으로써 해상 교통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서도면을 이루는 주문도·볼음도·아차도·말도, 삼산면의 서검도·미법도 등의 섬들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으로는 화도면 선수 선착장~주문도 살곶이 선착장, 주문도~아차도~볼음도~선수 선착장, 삼산면 석모도 하리 선착장~미법도~서검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운항한다.

관광[편집]

바다와 섬들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인 마니산과 고려산·전등사·보문사·적석사 등의 명산과 고찰(古刹), 개국 신화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 유적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수도권에서 접근하기도 용이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려산을 중심으로 반경 4㎞ 이내에 하점면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를 비롯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120여 기가 분포하여 2000년에 전북 고창군, 전남 화순군의 고인돌과 함께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2년에 관광단지로 지정된 길상면 선두리 일원에는 무동력 바퀴 썰매를 타고 1.8㎞의 경사진 곡선 트랙을 내려오는 루지와 곤돌라, 회전 전망대 등이 설치된 강화 씨사이드 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다.

대표적 관광 명소로는 갑곶 돈대를 비롯하여 연미정·적석사·광성보·초지진·전등사·마니산(참성단)·보문사 등 8곳의 경관을 '강화 8경'으로 꼽는다. 제1경 갑곶 돈대(강화 갑곶돈, 사적)는 강화도 초입에 위치한 강화 관광의 출발지이자 고려 시대의 대몽항쟁과 조선 말기의 병인양요를 겪은 역사의 현장으로서 돈대 구역 안에 강화 전쟁박물관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가 있으며, 이 섭정(利涉亭)에 오르면 염하의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제2경 연미정(인천유형문화재)은 정묘호란 때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던 월곶돈대 안에 세워진 정자로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 제비꼬리[燕尾]처럼 흐르는 물길과 파주시·김포시, 북한의 개풍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달맞이 풍경이 일품이다. 제3경 적석사는 고구려 장수왕 때 천축의 승려가 고려산 기슭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고찰로, 절 근처의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 광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제4경 강화 광성보(사적)는 신미양요 때 미국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벌인 곳으로, 당시 순국한 어재연 장군 형제와 병사들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신미순의총, 손돌목 돈대·용두돈대 등의 유적이 있으며, 지형이 돌출하여 산책 및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제5경 강화 초지진(사적)은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운요호사건의 격전지로서 당시의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투에 사용된 홍이포(紅夷砲)의 진품(초지진 홍이포)이 보존되어 있다. 초지진과 갑곶돈대·고려궁지·광성보·덕진진를 연계하여 강화전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제6경 전등사는 고구려의 아도(阿道)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고찰로, 단군의 세 아들이 축조하였다고 전하는 강화 삼랑성(정족산성) 내의 수려한 경관 속에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등 다수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계절마다 색다른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제7경 마니산(참성단)은 단군신화가 서린 영산(靈山)으로서 1977년에 관광진흥법에 따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강화 참성단(사적)에서는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 행사가 열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채화 봉송한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서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 기슭에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정수사, 함허동천야영장이 있다. 제8경인 석모도의 보문사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고찰로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인천유형문화재)이 새겨진 절 뒤편의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에 오르면 한눈에 펼쳐지는 석모도의 전경과 망망한 서해의 풍광이 일품이다.

다른 역사 명소로는 강화읍에 고려 고종의 묘소인 강화 홍릉(사적), 고려 강도 시대에 축조한 강화산성(사적)과 궁궐로 사용되었던 강화 고려궁지(사적), 조선시대에 강화 지역을 통할하던 강화 유수부 동헌(인천유형문화재),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물던 용흥궁(인천유형문화재), 1900년에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을 응용하여 한옥으로 지은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양도면에 고려 희종의 묘소인 강화 석릉(사적), 원종의 비(妃) 순경태후의 묘소인 강화 가릉(사적),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묘소인 강화 곤릉(사적), 길상면에 고려의 문장가로 《동국이상국집》 등을 남긴 이규보 묘(인천유형문화재), 선원면에 김상용 등 병자호란·신미양요 때의 충신 29명의 위패를 봉안한 충렬사(인천유형문화재), 조선 철종 외가(인천문화재자료), 교동면에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유폐되었던 연산군 유배지(향토유적) 등이 있다.

레저·휴양 명소로는 강화읍에 옛 방직공장 건물의 정취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조양 방직카페, 강화에서 번성하였던 직물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고 직조 시연·다도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소창 체험관, 삼산면 석모도에 숲속의 집과 수목원 등을 갖춘 석모도 자연휴양림, 민머루해수욕장과 미네랄 온천, 화도면에 동막해수욕장과 장화리 해변의 일몰 조망지, 후포항 선수 포구 어판장, 길상면에 마리원캠핑장과 동검도 하늘정원 캠핑장, 산사(山寺)의 일상과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전등사 템플스테이, 화도면과 길상면에 걸쳐 넓게 발달한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천연기념물), 내가면에 야영 데크와 산림욕장 등을 갖춘 덕산 국민 여가 캠핑장,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 최북단인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지역에 조성되어 남한에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일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 송해면에 민통선 부근에 조성된 휴양시설로 북한 지역을 육안으로 조망할 수 있는 강화평화빌리지, 강화의 특산물인 화문석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강화도 령화문석 체험장, 불은면에 과학·예술·탐험·놀이를 결합하여 항공우주 과학테마파크로 조성한 옥토끼우주센터, 집라인·클라이밍·서바이벌게임과 휴양림 시설 등을 갖춘 강화레포츠파크, 교동면에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고향의 시장인 연백장을 본 따서 골목 시장으로 조성한 대룡시장,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히는 월선포구 등이 있다.

농촌 체험 마을로는 속노랑고구마·장준 감 따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선원면 지산리의 도래미 마을 비롯하여 양도면 삼흥리의 달빛 동화마을, 내가면 황청리의 용두레마을, 송흥 면 당산리의 화문석 마을, 삼산면의 석모도 해미지 마을, 서도면의 볼음도 저어새생태 마을, 불은면 두운리의 행복 나들이 불은마을, 길상면 장흥리의 강화도자연체험농장 등이 있다. 먹거리촌으로는 선원면의 더리미장어마을, 화도면의 선수밴댕이 마을, 내가면의 외포리꽃게 마을 등이 있다.

걷기 여행길로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갑곶돈대에 이르는 18㎞ 구간의 심도역사문화길을 비롯하여 호국돈대길, 고려왕릉 가는 길 등 20개 코스의 강화 나들길이 조성되어 있다.

생활 문화[편집]

매년 4월이면 고려산의 진달래 군락지와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광장 일원에서 강화 고려산 진달래축제가 열려 진달래를 주제로 한 체험 프로그램과 버스킹 페스티벌, 특산물 장터 등이 펼쳐진다. 지역 특산물 축제로는 9월에 강화 섬 포도축제, 10월에 강화 고려인삼축제와 강화도 새우젓축제가 열린다. 길상면의 전등사에서는 매년 10월에 삼랑성 역사 문화축제가 열려 가을음악회와 성찰을 주제로 한 전시, 인경(印經)·목공예 등의 체험 프로그램, 영산대 재·다례 재·마당극과 먹거리 장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이 밖에 마니산 일원에서는 개천절을 맞이하여 강화 마니산 개천 대축제가 열리고, 강화읍 일원에서는 원도심의 문화재를 활용한 야간 관람·체험과 공연·전시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화 문화재 야행 축제가 열린다.

주요 민속놀이로는 용두레질 놀이와 시선 뱃놀이가 전승한다. 용두레질 놀이는 농부들이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용두레를 이용하여 논에 물을 대면서 노래를 부르며 작업하는 과정을 놀이화한 것인데, 물을 퍼 올리며 부르던 용두레질 노래가 인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선 뱃놀이는 땔감이나 어획물을 운반하는 시선(柴船)의 사공이 뱃노래를 부르며 물건을 실어나르는 과정을 놀이화한 것인데, 이때 부르는 시선 뱃노래는 '인천 근해 갯가 노래 뱃노래'(인천 무형문화재)에 포함된다. 이 밖에 외포리 곶창굿과 갑비고차농악이 전승하여 인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향토음식으로는 특산물인 순무로 담근 순무김치와 순무밴댕이김치, 새우젓을 넣어 요리한 젓국갈비, 멸치와 바지락을 끓여 낸 육수에 메밀 반죽을 칼로 썰어 만든 면을 넣고 익힌 메밀 칼싹뚜기 등이 알려져 있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강화 장정리 오층 석탑·강화 정수사 법당·강화 전등사 약사전을 비롯한 보물 12점, 강화 삼랑성·강화산성·강화 선원사지를 비롯한 사적 16개소,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강화 볼음도 은행나무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5점, 국가무형문화재 1점(완초장) 등이 있다. 이 밖에 1900년에 건립된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 대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 지정 문화재로는 보문사 석실·강화 석수문·적석사 사적비를 비롯한 인천유형문화재 26점, 삼현육각·강화 교동 진오기 굿을 비롯한 인천 무형문화재 5점, 강화 전성·교동 읍성·김상용 순절비를 비롯한 인천 기념물 36점, 인천 민속문화재 1점(보문사 맷돌), 선수돈대·강화 서도 중앙교회를 비롯한 인천문화재자료 12점 등이 있다. 이 밖에 고려 강도 시대에 축조된 강화 중성(江華中城) 등 10여 점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강화군〉, 《위키백과》
  2. 강화군〉, 《네이버 지식백과》
  3. 강화군〉, 《나무위키》
  4. 강화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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