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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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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시설(沐浴施設)은 머리를 감으며 온몸을 씻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구, 기계, 장치 따위를 베풀어 설비한 곳을 말한다.

개요[편집]

목욕시설이란 목욕탕 안의 목욕시설과 기계실, 휴게실 등을 말한다. 목욕탕 운영은 구청장이 하며 구청장은 목욕탕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하여 법인·단체 또는 개인에게 위탁할 수 있다. 구청장은 수탁자수탁사무의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유재산물품을 사용하게 하거나, 소요되는 비용을 예산의 범위 안에서 수탁자에게 지원할 수 있다. 목욕탕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개방하여야 하며, 관리비 부족 등의 사유로 개방을 제한할 수 없다. 수탁자는 매주 요일을 지정하여 장애인 등에게 우선 이용하도록 할 수 있다. 구청장은 부득이한 사유로 목욕탕의 개방제한 사유가 발생할 때에는 개방제한 사유 및 제한 기간 등을 지체없이 고지하여야 한다. 하지만 공중의 유해한 행위를 하는 자 또는 전염성 질병이 있음이 확인된 자, 술에 만취한 자,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미치게 하거나 방해될 물품을 휴대한 자, 그 밖에 입장을 거절하여야 할 사유가 있는 자는 입장 거절 및 퇴장을 명할 수 있다.

구청장은 장애인, 경로우대자, 수급자(시설수급자 포함), 한부모가족, 국가유공자, 중증장애인(1급, 2급)을 동반하는 보호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동반하는 보호자, 미취학 아동, 중증장애인 및 노인 등에 대한 목욕 봉사 등을 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 그 밖에 구청장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자는 목욕탕 이용료 할인 또는 감면할 수 있다. 감면 및 할인을 받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대상자를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를 제시하여야 한다. 자원봉사자는 수탁자에게 자원봉사 등록해야 하며 수탁자는 이·미용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자에게는 실비를 받을 수 있다. 수탁자는 목욕 비품 및 음료 등을 판매할 수 있다. 입장권은 수탁자가 판매하거나 수탁자가 지정하는 단체 및 개인에게 위탁하여 판매하게 할 수 있다. 또다른 경우 수탁자는 위탁 판매자에게 판매액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지급할 수 있다.

수탁자는 위탁시설·장비·예산 등을 위탁받은 목적 외에 사용하면 안 되며 관계법령과 조례 및 위탁계약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수탁자는 매 사업연도 개시 전에 운영 활성화 및 이용률 제고를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하다. 구청장은 수탁자가 관계법령 및 조례가 규정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때, 수탁자가 계약조건을 위반한 때, 그 밖에 위탁운영을 계속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한 때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위탁을 해지할 수 있다. 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수탁자에 대하여 목욕탕 운영에 관한 보고를 하게 하고, 그 이행 결과에 대하여 관련 공무원으로 하여금 수탁자의 사무소 및 위탁 운영하는 시설 등에 출입하여 관계서류, 그 밖의 물건을 조사, 검사하는 등의 지도·감독을 실시 할 수 있다. 구청장은 제1항에 따라 조사 또는 검사 결과 위탁 해지 또는 시정 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수탁자는 목욕탕 운영과 관련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 구성·운영과 관련한 사항은 수탁자의 자체 규정으로 정하며 운영위원회 위원에게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또한, 구청장은 수탁자의 성명, 주소, 위탁 기간, 위탁대상사무 및 내용, 수탁자의 책무 및 준수사항, 시설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내용을 포함하여 위탁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위탁계약 기간은 2년으로 하되, 재위탁할 수 있다.[1]

종류[편집]

목욕탕[편집]

목욕탕(沐浴湯, public bathing)은 목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목욕탕의 역사

문명이 세워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인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대규모의 공중 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문명의 초창기부터 목욕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음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고대 그리스 때는 온천에서 목욕 문화가 생겼다. 목욕을 자주 하면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목욕은 일반 석재나 대리석을 사용해 만든 탕에 따듯한 물을 담고, 그 안에 들어가 시녀가 몸을 닦아주고, 목욕이 끝났다면 젖은 몸의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고, 뽀송해진 몸에 기름을 발라줬다. 손님이 목욕을 한다면 시녀 또는 주인집의 딸이 입욕보조원 역할을 했다. 스파르타의 열기욕도 유행했는데 증기탕에서 땀구멍을 열어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끝맺었다고 한다. 목욕을 하면서 몸과 함께 마음도 닦는다는 인식이 있어 전 그리스에 유행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최초의 공영 공중목욕탕은 기원전 4세기경에 생겼는데, 원래 강이나 바다에서 목욕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이를 보고 그리스식 목욕에 매료되어 그리스식 목욕탕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신체를 단련할 수 있으며 젊은 청년들의 교육을 담당한 시설인 체육관이 생기게 되자, 자연스레 땀을 씻을 수 있는 목욕탕도 같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식 목욕탕을 만들기 전에는 신체를 나약하게 만든다면서 노예들의 목욕을 금지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목욕 문화가 확산되면서 부유층들은 안 보이고 으슥한 곳이긴 하지만 집에 목욕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고, 수로가 생겨 사람들이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공목욕시설이 부흥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기술상 등의 문제로 물을 수시로 갈지못했고 여기에 물의 따뜻함이 더해지면서 편충·선충 등 기생충의 안식처로 변하였다. 청결을 목적으로 하던 목욕이 기생충의 전파 경로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깨끗한 상수도 시설로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대규모 확산을 차단한 로마인들이었지만 불행히도 목욕은 기생충에 대해서 아무런 예방책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욕을 자주 한다고 해도 목욕을 안 하기로 유명했던 바이킹이나 중세 유럽인과 비교해 보면 로마인의 몸에 기생충이 더 적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중세 시대에 들어서도 유럽에는 대중목욕탕이 존재했고 씻는 것을 그다지 기피하지도 않았다. 극히 일부의 고행자들이 목욕을 적극적으로 기피했는데, 반대로 말하면 목욕 안 하는 게 고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보통은 목욕을 좋아했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중세 후기에 들어 물로 씻는 일반적인 목욕 대신 사우나가 보급되고 증기 목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은 청결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중세 말에 들어서 목욕탕은 비위생적인 관리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몸을 씻지 않는 기괴한 풍습이 생겨나며 몰락한다.

이건 전염병의 원인이 비위생적인 관리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목욕이라고 잘못 짚어버린 탓도 있다. 다만 중세 시기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어중간한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안 씻고 사는게 전염병에는 보다 안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목욕탕 말고도 빵집에서 빵 굽는 증기를 이용한 한증막 형식의 목욕탕도 널리 퍼졌다고 전해진다. 근대에 들어서는 인구는 폭증했는데 사회 기반 시설은 점차 열악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고대나 중세보다도 사람들이 더 잘 못 씻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청결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목욕 시설을 유지하려면 대량의 깨끗한 물과 그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 그리고 물을 데울 수 있는 연료가 필요한데 과거에는 사람 수가 적었기에 일단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발전한 기술력으로도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향수가 널리 쓰이고 발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목욕탕

한국의 경우 박혁거세 신화나 김알지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알에서 태어난 이들을 냇가에서 씻기자 비로소 광채가 났다고 하여 오래 전부터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해 씻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불교식 목욕재계(沐浴齋戒) 개념과 더불어 몸을 청결히 했다는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신라시대의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불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몸을 자주 씻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정방이라 하여 실내에 목욕소를 두었다. 현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절에 목욕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다니는 절에서 씻었다. 숭유억불로 인해 목욕 문화가 쇠퇴했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때 당시의 위생 요소들을 볼 때 한국의 목욕 문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최선진국 문화에 속한다.

왕실이나 민간에서 한국 내의 온천지로 온천욕을 다녀오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온양에는 행궁을 설치했을 정도이다. 당시 온천욕은 휴식의 의미도 있었지만 대개 의료적인 측면이 컸다. 1617년 정구(鄭逑)가 남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 동래 온양 온천의 온정원(溫井院)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이미 온양 온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해 수차례 개축하였으며 이는 1766년 부산 온양 온천에 세운 온정개건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온정개건비 앞에 있는 석조(石槽)는 현존하는 조선 당시의 욕조 유물이다. 봉산욕행록 등 당시 기록을 보면 나무 욕조도 같이 쓴 듯 하다. 고려시대까지는 옷을 벗고 씻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서 목욕용 옷을 따로 입고 씻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피부에 좋다며 남아를 복숭아 꽃물에 씻긴 기록이나 쌀겨, 조두 등을 비누 처럼 거품을 내어 사용한 기록이나 수세미로 만든 일종의 목욕용 기구들과 전하는 이름들을 볼 때 어느 정도 목욕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대의 찜질방과 비슷한 유형인 한증막이 존재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 탁족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을 볼 때 정형화된 욕탕보다는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는 행위를 즐긴 경우도 많은 듯하다. 1905년 서울 서린동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는데, 모르는 사람끼리 발가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에 익숙지 않은 문화라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 선조의 목욕문화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목욕탕 문화가 유입되기도 해서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경우 1909년에 부산 시가지에서 온천이 있는 동래까지 부산전차를 만들어 온천 셔틀로 돌리기도 했다.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대중목욕탕이 들어섰지만 당시 사람들은 공중 목욕탕을 두고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목욕 풍습은 계속 이어졌고 대중목욕탕 또한 이태리 타올과 목욕관리사도 생겨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식 목욕탕이 만들어 졌으며 1990년대 중후반에 찜질방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대다수가 찜질방과 겸업하고 있다. 기사. 찜질방이 없어도 어지간히 작은 사이즈가 아닌 이상 이발소가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겸하는 업소라도 대개 목욕탕 시설 안에 찜질을 위한 작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대다수다.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도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중목욕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어느 동남아 남성은 한국의 목욕탕에서 모든 남성들이 나체로 있는 모습을 보고 컬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자국의 목욕탕에서는 같은 남탕이라도 팬티는 입고 목욕했다고 한다. 사실 이건 제법 많은 나라들이 그런다. 유럽과 아랍, 북아프리카를 다니며 신혼여행을 1년에 걸쳐 다닌 이우일, 선현경 내외도 유럽이나 아랍 목욕탕에서 팬티를 입고 다니는 탓에 이우일은 현지 목욕탕에서 훌러덩 벗고 들어갔다가 다들 어이없게 쳐다봤다는 일화가 나온다.

1999년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전 한국 원정 경기를 하러 온 바레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팬티를 입고 목욕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국 내 거주 미국인 한 명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다 벗은 걸 보고 게이 사우나로 착각해 남중생을 성추행하다 불구속 입건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목욕탕에서 일본은 수건을 두르는 편이고 중국은 두르지 않는 추세고 튀르키예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팬티나 바지를 입고 들어간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한국 '찜질방' 항목에서는 한국의 목욕 문화를 같이 설명하며 수건으로 가리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독 새해 1월 1일이 되면 붐비는 곳이기도 한데 지난 해의 낡은 때를 벗겨내고 새해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1월은 목욕탕의 최고 성수기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피해를 가장 크게 보고 있는 업소 중 하나다. 아무래도 비말차단 장비 없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물로 알몸 상태로 목욕을 한다는 질병 감염 최적의 조건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피하게 되었다. 방역을 강화한다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확산을 막으려면 아예 공중 목욕탕에 보조금을 주고 전부 휴업을 시켜야 할 듯 하지만, 쪽방촌 주민 등 일부 사회 계층은 공중 목욕탕이 문을 닫으면 씻을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이 틈을 타 2021년 말부터 혼목을 하는 1인 세신샵이 열리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방역 규제가 풀려 업체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금리상승과 난방비 폭등으로 인해 코로나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그러다 2023년에는 목욕탕, 찜질방에 오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서울특별시 마포구 구립 목욕시설 운영 조례〉, 《U-LEX 법률우주》, 2009-10-01
  2. 목욕탕〉,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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