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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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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산

개운산(開運山)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이다. 높이는 해발 134m이다.

개요[편집]

  • 개운산은 안암산(安岩山), 진석산(陳石山)이라고도 한다. 개운산 남쪽 기슭, 안암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큰 길을 따라 올라가 안암동5가 157번지 뒷산의 이어진 봉우리가 높이 둘러선 아래에는 개운사가 있다. 개운사는 태조 5년(1396) 왕사 무학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고려대학교 이공대 부근에 짓고 이름을 영도사(永導寺)라 하였다. 정조 3년(1779)에는 원빈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부근에 묘소를 정하고 영명원(永明園)이라고 하였는데, 절이 원묘에서 가깝다 하여 북쪽으로 옮겨 짓고 이름도 개운사라고 고쳤다. 개운사라는 절이 있어 붙여졌다고 전해지는데 개운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1396년에 세웠다. 또한 안암동에 있어 '안암산'으로, 종암제1동의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어 진석산(陳石山)이라고 불렸다. 이것이 지금까지 미아리 돌산으로 알려진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면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영도사의 도문 스님 처소에서 주로 양육되었는데, 언젠가 영도사에서 노닐다가 절의 한 모퉁이에 이름을 써놓았고, 왕위에 오른 다음 절 이름을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으로 개운사라 하였다고 전하면서 20세기 이후 한국 교육불사와 진보적 불교운동을 주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1]
  • 개운산은 서울시 성북구에 있으며 안암동과 종암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높이는 약 134m이다. 개운산(開運山)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개운사(開運寺)라는 사찰이 있어 이름을 따왔다. 개운사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기여한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처음 이름은 영도사(永導寺)라 하였다가 정조 때 개운사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개운사에는 중앙승가대학교(中央僧伽大學校)가 자리하고 있다. 그 외 고려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가 개운산 자락에 위치한다. [2]
  • 개운산은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산으로서, 안암산, 陳石山이라고도 한다. 삼각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끝자락은 보현봉에서 형제봉과 북악터널의 위쪽인 보토현을 거쳐, 328m 봉우리에서 다시 서남방의 북악 지맥과 동남방의 미아리고개 지맥으로 갈린다. 이 동남방 지맥은 貞陵을 끼고 돌아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로 이어지며, 다시 표고 134m의 개운산 봉우리를 형성한다. 개운산은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의 개운사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 안암동에 있어 '안암산'으로, 종암제1동의 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어 진석산으로도 불렸다.

개운산의 역사[편집]

  • 개운산 일대는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신흥 주택가로 각광받으면서, 서쪽 기슭인 돈암동과 동선동 일대에 전차가 가설되고, 인구 집중도가 높은 주거지로 변하였다. 따라서 1940년에 개운산 일대는 공원지역으로 고시되었다. 이에 앞서 1934년에는 현재의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안암동 건물이 신축되어 자리하게 되었다. 개운산 주위에는 남쪽으로 고려대학교, 서쪽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북쪽으로 서라벌중 · 고등학교가 위치하였지만 1956년 3월 설립되었던 서라벌고등학교는 1958년 4월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가 1998년 2월, 중계동으로 이전하였다.
  • 현재 개운산의 표고 75m 이상 지역은 임야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그 이하는 주택가와 학교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광복 이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의 야산은 울창한 산림으로 되어 있어, 인근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였고, 낙엽이나 나무의 잔가지들은 땔감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많은 월남민들이 산비탈에 정착하면서부터 나무를 마구 베어냈고, 6 · 25전쟁 때 미아리~종암동을 잇는 국군의 서울 방어 저지선이 바로 이 능선이었으므로, 포격전에 의해 많은 나무가 불타서 한때는 민둥산이 되었다. 그 후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조림과 식목사업으로 수령 50~60년 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개운산 채석장 돌산 부근에 있어 미아리촬영소라 불리었던 영화촬영소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존재하였지만 영화촬영소는 없어졌고 1982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인근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기능하며, 산 중턱 이상까지 도로가 놓여 접근하기 쉽다.

지형조건[편집]

  • 개운산 남쪽 기슭, 안암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큰 길을 따라 올라가 안암동5가 157번지 뒷산의 이어진 봉우리 아래에는 개운사가 있다. 개운사는 태조 5년(1396) 왕사 무학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고려대학교 이공대 부근에 짓고 이름을 永導寺라 하였다. 정조 3년(1779)에는 원빈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부근에 묘소를 정하고 永明園이라고 하였는데, 절이 원묘에서 가깝다 하여 북쪽으로 옮겨 짓고 이름도 개운사라고 고쳤다. 개운사는 20세기 이후 한국 교육불사와 진보적 불교운동을 주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6년부터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면서 강원을 이끌어 나갔던 일이 그 시초였고, 1970년대 부속암자인 대원암에 탄허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사업에 종사하였던 일이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1981년부터 중앙승가대학이 이곳을 교육 도량으로 사용하면서 젊은 학인스님들이 불교진보운동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개운산 일대는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신흥 주택가로 각광받으면서, 서쪽 기슭인 돈암동과 동선동 일대에 전차가 가설되고, 인구 집중도가 높은 주거지로 변하였다. 따라서 1940년에 개운산 일대는 공원지역으로 고시되었다. 이에 앞서 1934년에는 오늘날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안암동 건물이 신축되어 민족교육기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개운산 주위에는 남쪽으로 고려대학교, 서쪽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북쪽으로 서라벌중,고교를 비롯한 많은 초, 중, 고등학교가 위치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땅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개운산근린공원[편집]

  • 개운산공원은 1940년 3월 12일 지정된 마을동산 성격의 산지형 공원이다.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신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인접하여 있고, 면적은 297,926㎡이며, 공원 인근에는 개운산스포츠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산 형세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힘들지 않게 산책할 수 있으며 운동장이 있어 축구, 게이트볼, 배드민턴, 테니스 등 운동을 할 수 있다. 전에는 아까시나무와 현사시나무가 많았으나 도시환경림 조성으로 불량수목을 제거하고 잣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많은 수목 등이 자라고 있다. 개운산은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의 개운사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 안암동에 있어 '안암산'으로, 종암1동의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어 '진석산(陳石山)'으로도 불리운다. 공원 내에는 향토수목 32종 3,290주가 식재되어 있어 자연학습관찰로를 조성하여 어린이 및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 개운산운동장에는 2003년에 66m의 지압보도와 정자 및 핸드레일을 설치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가족이 함께 운동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한다.
  • 개운산 공원은 1940년 3월 12일 지정된 마을동산 성격의 산지형 공원이다. 면적은 322.174㎡이며, 개운산 입구에서 산 정상의 헬기장에 이르는 1km 구간을 시각장애인의 편의와 안전을 최대한 배려하여 조성하였다. 산 형세는 자연스런 형태로 힘들지 않게 산책할 수 있다. 산책로 입구 숲속에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평상이 반겨준다. 편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가 새롭게 마련되었다. '산마루 북카페'는 빈손으로 방문했더라도 삼림욕을 즐기며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는 장소이다. 읽은 책은 다시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한다. 산마루 북카페 아래로 조금만 이동하면 유아숲체험원이 있다.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래놀이터, 균형잡기 놀이터, 나무 놀이터, 모험 놀이터 등이 조성되었다. 미리 신청한 단체에 우선권이 있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어린이들이 유아숲체험원을 이용 중이라면 이용할 수 없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숲속 놀이터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원길 주변 숲속 곳곳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헬스장을 찾지 않아도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숲길을 걸으면서 신발과 옷에 흙먼지가 묻었어도 걱정이 없다. 산책길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에 커다란 돌에 새겨진 시를 읽으면서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개운산 숲 나들길[편집]

  • 대도시에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과 수도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개운산은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산으로서 안암산, 진석산(陳石山)이라고도 한다. 노선 주변에는 태조 5년(1396) 왕사 무학이 창건한 개운사가 있어 산의 이름이 되었다. 산 중턱 이상까지 도로가 놓여져 접근하기 쉬우며 산을 한 바퀴 빙 둘러볼 수도 있고, 이 코스처럼 중턱 숲길을 따라 걷다 고려대 캠퍼스의 고풍스러운 건물을 감상하는 길로 연결해 볼 수도 있다. 개운산은 정상과 중턱 오솔길 모두 성북구에서 공을 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또 정상 조망대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곳임에도 시원한 도심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 '나라의 운을 연다'는 뜻의 인근 사찰 이름을 딴 개운산. 그러나 거창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부드러운 길을 품었다. 개운산에 조성된 개운산 공원은 약 30만㎡에 능선과 중턱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와 오솔길을 갈래갈래 뿌려 놓았다. 심지어 군사훈련용으로 만들어 놓은 진지까지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산 전체가 공원화되어 있다.
  •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국 불교 개혁의 근원지이고, 현재는 김포에 위치하고 있지만 불교 교육의 근본도량인 중앙승가대학이 있던 곳이다. 개운사는 현재 대대적인 증건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현대식 건물로 지은 지상 5층의 중앙승가대학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 절의 암자로서 대원암과 보타사가 절 동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근 보타사 대웅전 뒤의 암벽에 5m 크기의 마애석불이 발견되었으므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운산 스포츠센터[편집]

  • 센터에는 도심 속에 청정 자연히 숨 쉬는 쾌적한 환경에 맑은 물 수영장, 넓고 쾌적한 실내 공간과 관내 보건소 및 병원과 연계해 정기적인 기초의학 검진과 바이오 스페이스 최신 체성분 검사기(inbody4.0) 도입으로 개개인에 몸 상태에 맞는 운동처방을 실시하는 다이나믹헬스클럽, 유산소 운동만을 위한 최신식 산소발생기를 도입 쾌적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유산소 달림방,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여가활동을 어린이들에겐 꿈과 희망을 성인들에게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스포츠문화교실, 소수정원의 양질의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취미교실 등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편의 시설로는 천연 한약재를 이용한 사우나,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한 샤워실과 탈의실, 지상과 지하층에 동시 주차 80여 대가 가능한 넓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센터 이용에 편익제공을 위해 셔틀버스 5대를 운영하고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개운산〉, 《위키백과》
  2. 개운산(開運山)〉,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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