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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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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궁산

궁산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산이다.

개요[편집]

  • 궁산은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한강변에 위치하며 높이는 약 76m이다. 삼국시대 때 궁산(宮山)의 이름은 부근의 지명에서 따와 파산(巴山)이라고 불렀고 산성(山城)이 있어 성산이라고도 했다. 궁산이라는 명칭은 산자락에 양천향교(陽川鄕校)가 있어 공자(孔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宮)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궁산 산성에 관군과 의병이 진을 치고 한강 건너편 행주산성에 주둔하는 권율(權慄)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쳤던 곳이다. 궁산은 이처럼 조선의 도성을 방비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군부대가 주둔하였다. 궁산은 서쪽의 개화산, 오른쪽의 탑산, 쥐산 등과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기에 선비들이 한강 뱃놀이의 풍류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였다. 산정에는 중국의 동정호의 누각 이름을 본딴 악양루(岳陽樓)가 있었지만 소실되었고 영조 때인 1737년 그 자리에 소악루(小岳樓)가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鄭敾)이 소악루에 올라 한강의 풍광에 취해 뛰어난 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후 소악루도 소실되고 1994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1977년 궁산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마곡철교가 궁산 앞으로 지난다. [1]
  • 궁산은 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서울의 산'에 의하면 과거 이름이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으로 다양했다. 파산은 삼국시대에 주변의 땅이름인 제차파의에서 유래했고. 과거 이곳에 성이 있어 성산으로도 불렸다. 진산은 양천고을의 관방설비가 돼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강을 지키는 빗장 역할을 했던 산이라 해 빗장 '관'(關)자를 붙여 관산으로 일컫기도 했다. 현재 표준 명칭인 궁산은 양천향교가 있어 궁(宮)으로 표시하던 것에서 연유했다. 궁산의 북쪽에는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난다. 강을 사이에 두고 궁산근린공원 맞은편에는 행주산성이 위치해 있다. 임진왜란 때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등지의 의병들이 궁산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한강을 건너 권율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해 승리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궁산근린공원[편집]

  • 가양도 한강변 양천향교 인근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정상 부근의 소악루에서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인근의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겸재정선미술관, 양천향교 등도 강서구의 대표적 볼거리이다. 궁산은 서쪽의 개화산, 오른쪽의 탑산, 쥐산 등과 한강 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기에 선비들이 한강 뱃놀이의 풍류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였다.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와 마곡대교 방향으로 '소악루'로 향할 수 있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벼슬을 버리고 악양루 옛터에 지은 누각이다. 중국동정호의 악양루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해 소악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1740년 양천현감으로 부임해 당대 진경시의 태두 이병연과 그림과 시를 바꿔보자는 약조를 맺고 매일 소악루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을 그렸다. 겸재 정선이 이곳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누각의 원위치는 '여지도서', '양천군읍지'와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가양동 산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강서구는 주변의 변화가 극심해 한강변 조망을 고려해 1994년 현 위치에 소악루를 신축했다.

궁산 고성지[편집]

  • 궁산 정상에 오르면 과거 이 자리에 양천 고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양천 고성지는 조선 시대 양천현의 주산인 궁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 터다. 양천 고성은 궁산 정상부에 있는 둘레 200m 정도의 평지를 둘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길이는 218m이며,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은 토석 혼축성으로 축조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의 산'에서 '원래 이곳은 고구려 국경으로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지키던 요새 중 하나였다'며 '일제 때에는 김포 군용비행장 개설공사로 일본군이 주둔했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에 이어 국군이 계속 주둔했던 관계로 궁산 정상 부근의 양천 고성 원형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천 고성에서는 옛 성터의 흔적인 적심적과 그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 등도 발견됐다'며 '지금은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석축과 겨우 몇십 미터 정도 되는 성벽 흔적이 남아 있어 석성인지 아닌지 얼핏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고 했다.

등산코스[편집]

  • 궁산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오르는 것과 도는 것이다. 즉 양천향교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고, 둘레길을 따라 1.63km를 도는 방법이 있다. 두 방법 모두 궁산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정상을 빨리 정복하고 싶다면 양천향교역 2번 출구에서 내려 양천로길 따라 흥원사를 지나 양천향교 옆 오솔길로 산을 오르면 된다. 20분 정도만 걸으면 정상이다. 대신 이 방향으로 오르려면 지하철역부터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초행길이라면 조금 헤맬 수도 있다. 공암나루 부근 둘레길 시작점을 들머리로 잡고 약 1시간 정도를 걷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양천향교로 들머리를 잡고 정상까지 오른 후 성황사, 소악루를 거쳐 둘레길 시작점으로 내려오는 것이 하산하는 코스이다.
  • 양천향교 옆 오솔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크게 헤맬 것도 없이 표지판대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어느새 궁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정상은 너른 평지로 그 자체가 문화재인 사적 제372호 양천고성지다. 양천고성은 몇 차례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가 채집되었고, 건너편의 행주산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에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역사에서 오랜 세월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 유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기지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도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길 때 여기에서 머무르며 작전을 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실제로 정상에서 한강 쪽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행주산성을 머리에 인 덕양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봉화대를 올렸던 안산이 멀리 보인다. 양천고성은 궁산 정상을 중심으로 길이 200m 정도로 성벽을 쌓은 퇴메식(산 정상을 돌로 둘러쌓는 방식) 산성인데, 그 모양으로 인해 시루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건물터 몇 곳과 성벽 발굴 흔적만이 남아 있다. 역사적인 유적지, 아름다운 서울을 감상할 수 있는 소악루, 쉬운 등산로 등 초행자도 여유롭게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춘 궁산이다.

지리환경[편집]

  •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길을 내려오면 빽빽한 솔숲 사이로 파란 지붕의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관산성황사다. 관산은 궁산의 다른 이름이며, 성황사는 조선시대에 마을마다 도당할머니를 모시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당할머니는 백성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고 불운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겨졌는데, 특히 강가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겐 간절한 신앙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매년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내고 굿으로 도당할머니를 기렸다고도 한다. 성황사를 지나 내리막을 좀 더 걸으면 팔작지붕의 우아한 정자이자 궁산 등반의 하이라이트인 소악루가 나타난다. 궁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도 제법 볼만했지만 제대로 한강변을 구경하려면 소악루만 한 곳은 없다. 만약 둘레길로 들머리를 잡았다면 반대로 소악루부터 보고 성황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 원래 소악루가 있던 자리에는 중국 동정호의 누각 이름을 따온 악양루가 있었다. 그러나 화재로 소실되고 한동안은 버려져 있었다. 이후 조선 후기 영조대에 이르러 동복 현감을 지내던 이유라는 자가 그 자리에 소악루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 소악루가 유명해진 건 바로 그곳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들을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았기 때문이다. 정선은 65세가 되던 1740년부터 5년간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소악루에 올라 그림을 그렸다. 현재 소악루에 그의 작품도 바로 강 건너 남산을 바라보며 그린 <목멱조돈>과 갈안마재에서 피워 올리는 봉홧불을 바라보며 그린 <안현석봉>이다. 소악루에서 바라본 경치를 그린 작품은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행주산성 부근의 한강을 그린 <소악후월>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정선이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며 그렸다고 한다. 오늘날 정선이 바라봤던 서울 풍경은 사라졌지만, 공항철도가 지나는 마곡철교 등 현대화된 서울의 모습도 감탄을 자아내기엔 충분하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궁산(宮山)〉,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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