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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250 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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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250 GTO(Ferrari 250 GTO)
페라리(Ferrari)

페라리 250 GTO(Ferrari 250 GTO)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페라리(Ferrari)가 39대만 생산한 슈퍼카다. 페라리 모델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이 차는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만든 페라리 수퍼카 계보의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페라리 250 GTO는 1962년부터 3년 동안 GT 레이스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모델명의 250은 각 실린더배기량을 말한다. 당시 페라리는 12기통 엔진을 썼으므로 총 배기량은 3000cc급이 된다. GTO는 그랜드투어러(Grand Tourer)와 '적합하다'는 오몰로가토(Omologato)의 약자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고성능차이자 GT레이스 출전이 가능한 모델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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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편집]

페라리 250 GTO는 1962년 1월 처음 공개됐다. 미드십 엔진 대세인 오늘날의 스포츠카와는 달리 전통적인 프런트 엔진, 리어 휠 구동 모델이다. 경주뿐만 아니라 도로 주행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페라리 250 GTO는 1961년 생산된 250 GT SWB(short wheelbase)의 보디와 1958년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250 Testarossa)의 엔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이 작업은 페라리의 기술자 지오또 비짜리니(Giotto Bizzarrini)의 책임하에 진행됐다. 제작과정의 세부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단지 재규어 E-타입의 경쟁작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만 공개됐을 뿐이다.[1] 1961년 생산된 재규어 E-타입은 낮은 차체에 부드러운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을 보이면서도 세단의 안락함까지 갖춘 차로 1975년까지 총 7만 2500대가 생산됐다.[2] 265마력 3.8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속도 240㎞/h를 기록해 당시 가장 빠른 차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3]

비짜리니가 엔초와의 대립으로 해고를 당한 뒤 새롭게 고용된 엔지니어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가 이어 받아 개발을 완료했다. 보디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차체 디자인 업체인 스카글리에티(Scaglietti)가 맡았는데, 스카글리에티가 제작한 알루미늄 보디의 전체적인 형태는 1964년까지 지속됐다. 후반부 일부 모델들은 디자인업체 피닌파리나(Pininfarina)가 디자인하고 스카글리에티가 제작하기도 했다. 포르기에리와 스카글리에티는 풍동 및 트랙 테스트 등 세심한 노력 끝에 GTO의 보디를 제작하게 된다. 외관 디자인은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디자인인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롱 노즈 숏 데크(Long nose short deck) 방식이다. 얇고 작아진 전면 그릴 양쪽으로 네모난 헤드램프가 GTO만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GTO의 일부 모델 중에는 엔진후드 앞쪽에 3개의 개폐형 공기흡입구를 가진 것도 있는데, 이는 냉각 효율을 높일 때는 흡입구를 열고 공기저항을 줄이고 싶을 때는 흡입구를 닫을 수 있었다. 페라리 250 GTO는 1964년까지 총 39대만이 생산됐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의 GT 클래스 인증을 받기 위해 100대 이상 제작돼야 했으나 39대가 제작된 250 GTO가 어떻게 인증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점이 있다. 후기에 제작된 3대는 4리터 엔진을 달아 330 GTO라고 불리기도 한다.[4]

레이싱 성적[편집]

페라리 250 GTO에 앞선 1961년 르망 24시간 경주대회에서 첫 선을 보인 250 GT SWB는 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관심을 끌었고 이후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이나 재규어(Jaguar), 포르쉐(Porsche)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 250 GT SWB를 이어 등장한 250 GTO는 출시 첫 해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3년간 레이스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특히 당시 시속 254㎞를 찍으며 직선구간에서는 따라올 차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데뷔 첫 해인 1962년에는 세브링 12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250 테스타로사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인터유로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63~1964년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우승, 1962~1964년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에서 3년간 GT 클래스 부문 우승, 1962~1963년 르망 24시에서 GT카테고리 우승 등의 성적을 거뒀다.[5]

경매가 기록[편집]

페라리 250 GTO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페라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동차 수집가의 꿈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 영국의 한 수집가는 경매로 나온 250 GTO(1963년 모델)를 1,570만 파운드(당시 환율 300억 원 이상)에 구매하여 당시 세계자동차 경매가 최고 기록을 갱신한 적이 있다. 또 2011년 초에는 한 조각가가 실제 250 GTO의 1/8 크기로 24k 순금을 입혀 제작(무게 100kg)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250 GTO의 가치는 7000만 달러 가량으로 1936 부가티 라 부아츄 누와(경매 시작가 1억 1400만 달러 추정), 벤츠 300 SLR 울렌하르트(최종 낙찰가 1억 4300만 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비싼 차량이자 가장 비싼 페라리이다.[6][7][8]

각주[편집]

  1. 안창현 기자, 〈(자동차 디자인 시리즈 ⑫ 페라리) ‘가장 빠르고 비싼 차’ 기록경신 또 경신〉, 《문화경제》, 2015-11-19
  2. 피카미디어 PCARMEDIA, 〈차 한 대에 800억 원을 태운다고? 페라리 250 GTO〉, 《네이버 포스트》, 2021-07-14
  3. 전설을 기리다: 페라리 GTO〉,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4. 페라리 250 GTO - 자동차 수집가들의 꿈〉, 《네이버캐스트》
  5. 안광호 기자, 〈5. 車 수집가들의 꿈 ‘페라리 250 GTO’〉, 《경향신문》, 2011-11-11
  6. 김한용 기자, 〈페라리 250 GTO, 이번에는 750억원에 팔려...역사상 가장 비싼 차, "전년보다 두배 뛰었다"〉, 《모터그래프》, 2018-06-05
  7. 이다정 인턴기자, 〈페라리, 250 GTO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 《동아일보》, 2013-10-07
  8. 이소현 기자, 〈"낙찰가 1000억대 전망"…페라리 250 GTO 경매 등장〉, 《이데일리》, 2023-08-18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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