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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닌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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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닌파리나(Pininfarina S.p.A)
피닌파리나(Pininfarina S.p.A)

피닌파리나(Pininfarina S.p.A)는 바티스타 파리나(Battista Farina)가 1930년 창업한 이탈리아자동차 디자인·제작 회사이다. 대표적인 자동차 디자인 업계의 그루포 베르토네(Gruppo Bertone), 이탈디자인 주지아로(Italdesign Giugiaro)와 함께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에 연구소가 있고 직원은 2만여 명이다. 본사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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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피닌파리나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 기업이다. 1930년 바티스타 파리나가 설립한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Carrozzeria Pininfarina)가 피닌파리나의 전신이다. 안전, 공기역학, 작은 차체, 넓은 실내공간이라는 4개 요소를 디자인 포인트로 하여 자동차, 선박 외에 다양한 생활용품을 디자인·제작한다. 1940년대까지는 혁신적인 자동차 디자인 및 수작업에 의한 스페셜카의 차체 제작에 치중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었다. 1947년 당시 자동차의 표준으로 평가된 치시탈리아(Cisitalia)를 생산하였으며, 1952년에는 미국 내시 모터스(Nash Motors)의 앰버서더(Ambassador)를 디자인했다. 같은해, 경주용 차를 개조한 승용차로 품질에 문제가 많았던 페라리(Ferrari)의 의뢰를 받아 212 모델을 처음 선보였다. 이후 피아트(Fiat S.p.A)의 130 쿠페, 란치아(Lancia)의 베타 몬테카를로(Beta Montecarlo),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의 크로노스(Chronos) 등 독창적이고 뛰어난 스타일을 디자인했다. 피닌파리나는 지속적으로 페라리, 마세라티(Maserati), 알파로메오(Alfa Romeo), BMW 같은 유명 자동차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하이브리드와 일렉트로닉 자동차 분야를 연구ㆍ개발하고 있다. 또한 유로스타(Eurostar), 안살도브레다(Ansaldobreda)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손잡으며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중이다.[1] 계열사는 주로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인더스트리 피닌파리나(Industrie Pininfarina S.p.A),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개발하며 1982년부터 별도회사로 운영하는 피닌파리나 스터디 에 리체르케(Pininfarina Studi E Richerche), 1987년 설립한 설계전담회사인 프로툴스(Pro-Tools S.P.L), 1988년 설립한 북아메리카 지사, 1991년 설립한 독일 현지법인이 있다.[2]

역사[편집]

1930년에 바티스타 파리나가 설립한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는 자동차 디자인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공장으로 시작되었다. 1893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바티스타 파리나는 형이 경영하던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다 수제 자동차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를 세웠다. 피닌파리나라는 사명은 창업자 파리나의 이름에 그의 애칭인 피닌(Pinin, 작다)을 붙여 만들어졌다. 당시 피닌파리나는 알파로메오, 피아트, 캐딜락(Cadillac), 롤스로이스(Rolls-Royce) 등 자동차 제조사의 바디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수작업에만 집중했지만, 피닌파리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장을 넓히고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프레임이 없는 일체형 설계를 실현해 내면서 자동차 디자인 회사로 명성을 얻었다. 자동차 산업에서 피닌파리나가 지닌 상징성은 1947년에 선보인 '치시탈리아 202'(Cisitalia 202)에서 엿볼 수 있다. 1951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최초로 열린 자동차 전시에 소개되기도 한 치시탈리아 202는 '움직이는 조각'이라 불리며 현재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소장되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자동차 디자인의 표본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덕에 피닌파리나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인 내시 모터스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글로벌 회사로 입지를 다졌다. 피닌파리나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페라리와의 공동 작업이다. 1952년부터 피닌파리나와 페라리는 협업을 시작했다. 자사의 자동차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당시 치시탈리아로 이름을 알린 피닌파리나와 손잡고 그와 디자인이 비슷한 212 모델을 출시했다. 212 모델이 이목을 끌자, 피닌파리나는 페라리와 제휴를 지속하면서 F40, F60, 테스타로사 등 페라리를 대표하는 슈퍼카의 디자인을 맡았다. 페라리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F60은 걸 윙 도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고, 테스타로사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라인을 선보였다고 평가받았다. 사실 유명한 페라리 자동차의 대부분을 피닌파리나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푸조(Peugeot), 포드(Ford), 혼다(Honda), 란치아, 캐딜락 등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피닌파리나를 찾았다. 대한민국에서는 2002년에 출시한 대우자동차㈜누비라라세티, 현대자동차㈜라비타가 피닌파리나의 손을 거쳤다.

바티스타 파리나가 1966년에 세상을 떠난 후, 장남 세르조 피닌파리나(Sergio Pininfarina)가 회사를 운영을 이어받았다. 사실 세르조가 피닌파리나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인 회사로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디자인과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F60, 테스타로사, P4/5 등 페라리 유명 모델들의 디자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세라티, 벤틀리(Bentley), 푸조, 피아트 등과 협업을 하며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손을 거친 자동차들은 모두 명차가 되었고, 세르조는 세계 자동차 역사에 위대한 장인으로 기록되었다. 2012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페라리 박물관 '뮤지오 페라리'에서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르조 피닌파리나 특별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 피닌파리나 그룹은 '세르조'라는 자사의 콘셉트카를 선보이며 그룹의 수장이던 그를 추모했다. 1982년 피닌파리나 스터디 에 리체르케(Pininfarina Studi E Richerche)를, 1987년 설계 전담회사 프로툴스(Pro-Tools)를, 1991년에는 독일 현지법인을 각각 세웠다. 한편 1986년, 피닌파리나 그룹은 자회사인 피닌파리나 엑스트라(Pininfarina Extra)를 설립해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피닌파리나 엑스트라는 이름 그대로 피닌파리나가 취급하지 않는 제품과 건축, 인테리어를 디자인한다. 이들은 과학과 기술을 접목한 진보적 디자인을 시도하며 25여 년간 약 50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현재 세르조의 둘째 아들인 파올로 피닌파리나(Paolo Pininfarina)가 피닌파리나 엑스트라와 그룹을 이끌어가고 있다. 피닌파리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8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1][3]

주요 사업[편집]

자동차 디자인[편집]

피닌파리나는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인 바티스타 피닌파리나부터 아들 세르조 피닌파리나, 손자 파올로 피닌파리나까지 3세대에 걸쳐 85년 동안 이탈리아 디자인의 한 축을 이끈 자동차 디자인 가족 회사이다. 경험(Experience), 창조(Creativity), 그리고 혁신(Innovation) 이 세 가지는 피닌파리나가 설립 당시부터 추구하고 있는 기본 가치다. 창립자 바티스타는 이탈리안 디자인을 '선과 균형의 어울림, 그리고 단순함'이라고 정의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은 곧 경험을 뜻한다. 바티스타가 고집했던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미는 란차 아우렐리아 B24(Lancia Aurelia B24)와 영화 <졸업>에 출연한 알파로메오 1600 두에토(Alfa Romeo 1600 Duetto)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966년 그의 사망 이후 회사를 물려받은 세르조는 페라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형태의 아름다움은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몰두한 결실'이며 동시에 '디자인은 형태와 기술, 취향과 기능이 만나는 정점'이라고 했다. 이는 창조를 의미한다. 이미 전설적인 모델 페라리 250 GTO 디자인에 참여했던 그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곡선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페라리 테스타로사(Ferrari Testarossa)를 비롯해 페라리를 위해 혁신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진행했다. 2006년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페라리가 피닌파리나 세르조(Pininfarina Sergio)라는 모델을 헌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전 회장이었던 안드레아 피닌파리나는 '우리에게 도전이란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몇 년 안에 모든 자동차들은 필수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가지치기가 되면서 기능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력과 혁신의 결합이 필수다'라고 하면서 혁신을 얘기했다. 피닌파리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을 추구하기보다 기능과 디자인의 조화 속에서 이탈리아 스타일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4][5]

자동차 제조[편집]

피닌파리나 바티스타

피닌파리나는 럭셔리 전기차 및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를 위해 오토모빌리 피닌파리나(Automobili Pininfarina)라는 자동차 회사를 새롭게 설립했다. 피닌파리나의 강점인 자동차 디자인을 기반으로 강력한 전기 구동계를 얹은 고급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각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체적인 디자인을 사용하고, 위탁생산을 줄이자 피닌파리나는 재정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후 회생안을 찾던 피닌파리나는 2015년 12월에 마힌드라의 손을 잡게 된다. 마힌드라는 124억 루피(약 2,036억 원)의 거액을 지불하고 피닌파리나의 지분 76.06%를 인수했다. 피닌파리나는 마힌드라와 함께하면서 대대적으로 투자를 받게 된다. 마힌드라가 포뮬러 E에서 활약하며 얻은 배터리, 전기모터 등 전기차에 관련된 기술과 자동차 설계 기술과 피닌파리나의 드라마틱한 디자인을 더하여 고급 전기차를 제조하는 것이 목표이다.[6] 그리하여 피닌파리나는 2019 제네바 모터쇼에서 1900마력의 하이퍼 GT카 바티스타를 공개하며 단숨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피닌파리나가 선보인 바티스타는 카본파이버 소재의 경량 모노코크 차체섀시,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을 통해 최고출력 1,900마력, 최대토크 234.5kg‧m의 놀라운 퍼포먼스로 0→시속 100km 가속까지 2초 이내에 도달하는 성능을 갖췄다. 120kWh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500km 주행 가능하고 30분 이내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150대 한정 생산되며 2021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수작업으로 생산된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근교에 있는 피닌파리나의 고향인 캄비아노(Cambiano)에서 설계, 생산된다.[7]

피닌파리나 푸라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되는 몬테레이 카 위크에 출품 예정인 푸라(PURA) 비전 콘셉트카를 사전 공개 하기도 했다. 푸라 비전 콘셉트는 날렵한 쿠페 형태 차체와 바티스타의 하이퍼카 디자인 기조를 따른 모습을 취한다. 전면 디자인은 헤드라이트는 숨겨져 있고 주간주행등에는 1mm 이하 두께로 구성된 나노섬유 기술이 투입됐다. 또 차체 하부에는 다양한 탄소섬유 소재가 사용되고 거대한 23인치 휠과 함께 윈드실드와 리어 윈도우를 매끄럽게 연결하도록 설계된 대형 글라스 루프 중앙에는 LED 조명 링이 탑재됐다. 이번 콘셉트카를 위해 특별 설계된 걸윙 도어 스타일의 '라운지 도어'를 제작하고 센터 필러가 없는 디자인을 통해 승하차가 편리할 뿐 아니라 놀라운 실내 개방감을 전달한다. 또 실내 디자인에서 앞좌석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매우 낮게 포지셔닝되고 스티어링 휠 앞쪽으로는 대형 디지털 계기판이 배치됐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는 주차, 후진, 중립 및 주행 등을 선택할 수 있는 회전식 다이얼이 자리했다. 푸라 비전 콘셉트의 실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실내를 가로질러 우아한 곡선 형태로 배치된 대시보드로 흰색 가죽과 탄소 섬유로 장식된 도어 패널과 함께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움을 연출한다.[8]

주요 디자인 차종[편집]

치시탈리아 202[편집]

치시탈리아 202

치시탈리아 202는 이탈리아의 사라진 자동차 브랜드인 치시탈리아(Cisitalia)에서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생산한 스포츠카이다. 피닌파리나가 초기에 디자인한 조그마하면서도 단아한 빨간색 스포츠쿠페이다. 당시 '움직이는 조각품'이라고 불린 피닌파리나 초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치시탈리아는 1945년 피에로 듀시오라는 스포츠 레이스광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프로축구 선수 출신 사업가였는데, 스포츠의 대중화를 위해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피아트 그룹의 엔지니어인 지아코사와 함께 피아트 자동차의 부품과 엔진으로 스포츠카를 설계했다. 치시탈리아 202는 1,089㏄ 4실린더의 작은 엔진에 파워를 증강시켜 55마력의 힘을 냈다. 또, 기어변속장치 바디 재질 스타일링 등을 고집스럽게 스포츠화해서 차체중량을 777㎏까지 끌어내렸다. 이에 따라 작은 엔진에도 시속 160㎞를 내는 고성능 스포츠카가 탄생했다. 듀시오는 이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카를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페르디난테 포르쉐와 접촉했다. 그는 전범으로 수감중인 포르쉐 박사를 보석금 100만 프랑을 지불하고 석방시켰다. 그러나 꿈의 스포츠카 제작에 실패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치시탈리아 202는 1952년까지 170여 대가 생산됐다.[9]

페라리 250 GTO[편집]

페라리 250 GTO

페라리 250 GTO(Ferrari 250 GTO)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페라리가 39대만 생산한 슈퍼카다.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만든 페라리 슈퍼카 계보의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모델명의 '250'은 각 실린더의 배기량을 말한다. 당시 페라리는 12기통 엔진을 썼으므로 총 배기량은 12를 곱한 2,953cc급이 된다. 'GTO'는 Grand Tourer(GT·이탈리아어로 Gran Turismo)와 '적합하다'는 오몰로가토(Omologato)의 약자로 장거리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고성능 자동차이자 GT레이스 출전이 가능한 모델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페라리 250 GTO는 1961년 생산된 페라리 250 GT SWB(short wheelbase)의 바디와 1958년 르망 24시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250 Testarossa)의 엔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바디 디자인은 스카글리에티(Scaglietti)가 맡았는데, 스카글리에티가 제작한 알루미늄 바디의 전체적인 형태는 1964년까지 지속됐다. 후반부 일부 모델들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하고 스카글리에티가 제작하기도 했다. 익스테리어후륜구동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디자인인 본넷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롱 노즈 숏 데크(Long nose short deck) 방식을 채택했다. 얇고 작아진 전면 그릴 양쪽으로 네모난 헤드램프가 GTO만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GTO의 일부 모델 중에는 엔진후드 앞쪽에 3개의 개폐형 공기흡입구를 가진 것도 있는데, 이는 냉각 효율을 높일 때는 흡입구를 열고 공기저항을 줄이고 싶을 때는 흡입구를 닫을 수 있었다.[10]

페라리 F40[편집]

페라리 F40

페라리 F40은 1987년 페라리의 창업 4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슈퍼카이다.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차체는 경량 케블라탄소섬유,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11] 1987년 당시엔 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격인 포르쉐의 포르쉐 959 모델(Porsche 959)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포르쉐 959는 2.8리터 수평 대향 6기통 엔진, 450마력의 출력, 최고속도 315㎞/h을 자랑하는 사륜구동 슈퍼카다.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며 스포츠카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 있을 때다.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공개된 이 차는 페라리 F40이 공개되기 몇 달 전에 양산되기 시작했다. 페라리 F40은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찾아오기 위해, 즉 포르쉐의 959를 따라잡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후륜구동2인승 스포츠카인 페라리 F40은 1984년 레이싱카 페라리 288GTO 에볼루치오네(Ferrari 288GTO Evoluzione)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1100㎏ 중량의 페라리 F40이 지닌 V8 엔진은 네 개의 밸브(DOHC)를 가진 8개의 실런더로 구성되며, 배기량은 2936㏄이다. 배기량은 크지 않으나 트윈터보에 힘입어 478마력(7000rpm)에 최대토크 55㎏·m라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최고 속도는 315㎞/h의 포르쉐 959에 앞선 324㎞/h를 기록했다.[12] 정지 상태에서 100㎞ 가속 시간은 3.8초였다. 경쟁 모델인 포르쉐 959를 능가하는 성능을 기록하며 페라리 F40은 1987년 출시 이후 1989년까지 세계 최고속 양산차의 타이틀을 보유한다.[13] 1990년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가 출시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 자리에서는 물러나야 했다.[14]

각주[편집]

  1. 1.0 1.1 김민정 기자, 〈자동차 디자인의 살아 있는 전설, 피닌파리나〉, 《행복이가득한집》, 2014-03
  2. 피닌파리나〉, 《네이버 지식백과》
  3. 피닌파리나〉,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기업》
  4. 전종현, 〈피닌파리나〉, 《월간디자인》, 2014-10
  5. 중앙선데이, 〈“단순하게, 어울리게...그것이 우리의 디자인 철학”〉, 《중앙일보》, 2011-07-10
  6. 로드테스트, 〈전기차 제조사로 거듭나는 피닌파리나〉, 《네이버 포스트》, 2018-03-21
  7. 아이오토카 편집부, 〈국내 진출하는 피닌파리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오토카코리아》, 2019-11-01
  8. 김훈기 기자, 〈"미래차 디자인 이 정도는 되어야" 피닌파리나 '푸라' 비전 콘셉트 공개〉, 《오토헤럴드》, 2023-08-03
  9. 김상권 소장, 〈피닌파리아 ‘치시탈리아’(명차의 세계)〉, 《국민일보》, 1998-06-27
  10. 안광호 기자, 〈5. 車 수집가들의 꿈 ‘페라리 250 GTO’〉, 《경향신문》, 2011-11-11
  11. 오토카 편집부, 〈피닌파리나의 새로운 도전〉, 《오토카》, 2018-07-02
  12. 페라리 F40〉, 《위키백과》
  13. 안광호 기자, 〈1. 엔초 페라리의 유작 페라리 F40〉, 《경향신문》, 2011-10-14
  14. 안광호 기자, 〈7. 힘과 속도의 상징,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경향신문》, 2011-11-25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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