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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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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統一)은 '하나로 합치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주로 둘 이상의 국가의 통합을 의미한다. 현대에는 주로 분단국가 사이에서 많이 거론된다.[1]

개요[편집]

통일 또는 일통(一統)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분할되어 있던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 또는 체제나 체계 아래로 결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쓰인다. 기타 분야에서의 합친다는 의미로는 통합을 더 많이 쓴다.[2]

일반 국가끼리의 합병도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통일이라 부른다. 중국사에서 숱하게 언급되는 천하통일이나 한국사의 삼국통일이 대표적.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도 같은 표현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 통일은 동독과 서독의 통일 말고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을 말한다.

사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분단국가의 통일은 이전에 이미 통일된 상태였던 국가가 분단된 뒤에 다시 통일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재통일'이다. 영어로는 reunification에 해당된다.[1]

장단점[편집]

장점

통일을 하면 교통상, 군사적인 이점이 생긴다. 가로×세로 100km의 국가 2개가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지켜야 할 국경의 총합은 400km의 2배인 800km지만 통일이 되면 600km로 줄어든다. 또한 교통도 편리해진다. 기존에는 국경을 한 번 더 건너야 갈 수 있던 지역을 한 번만 건너서 갈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인구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경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시너지가 생기고 내수시장도 커진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남북한 통일을 예로 들며 통일이 이뤄질 경우 천문학적으로 낭비되고 있는 국방비가 인프라 확충 등 더욱 생산적인 자원에 대신 활용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단점

통일을 하고 나서 억지로 붙여놓으면 내부 갈등이 심해져 국가가 혼란해질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국력까지 쇠퇴할 가능성까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나 유고슬라비아, 수단, 나이지리아 등의 몇몇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 유고슬라비아의 경우만 해도 결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로 갈가리 찢어지고 말았다. 물론 체코슬로바키아는 평화롭게 분리독립되었으며, 그래서인지 지금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친하다.

한편 거주 지역은 같으나 민족이 달라서 다른 국가 및 지역으로 분단된 곳도 있다. 해외를 떠돌아다니던 유대인들이 다시 자신들의 옛 땅에 세웠던 이스라엘과 그 이전에 이미 그 옛땅에 존재했던 아랍인, 아랍계 주민들이 독립해야 했으나 이스라엘에게 빼앗겨 절반 정도가 준독립이 된 팔레스타인도 넓게 보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네덜란드와 벨기에처럼 민족이 같은데도 종교가 달라서 억지로 통일이 되었다가 다시 갈라진 사례도 있다.

그 밖에 서로 붙으려는 열망이 강렬하다고 하더라도 사회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1]

종류[편집]

평화통일

통일을 원하는 국가들이 합의 하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제도를 개편해서 합치는 통일이다. 국가 역사는 어느 쪽도 따르지 않으며, 통합된 새 역사가 시작된다.

무력통일

전쟁을 일으켜 상대를 정복하면서 자신 관할로 만드는 것이다. 국가 역사는 정복자 것을 따르며, 법과 제도도 승자의 것을 따른다. 고대와 중세에는 이런 방식으로 통일을 많이 했다.

1994년에 예멘이 재분단되었을 때, 북예멘이 남예멘을 전쟁으로 통해서 이긴 역사가 있다. 이 외에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적화통일시킨 것도 이에 해당된다.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킨 것도 이 이유에서다.

흡수통일

무력통일과 비슷해 보이나 여기는 국가 간 전쟁은 없고 멸망 원인이 내분과 자멸인 게 차이점이다. 한 국가가 막장이 되어서 우리나라 맡아달라 할 때 모든 권한을 받아서 자기 국가로 만드는 게 흡수통일.

1990년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예시로 들 수 있다.[1]

방법[편집]

군주제 시절에는 통일이 되려면 한쪽은 군주직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을 통한 통일이 많았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왕과 여왕이 결혼을 해서 통일이 된다든가,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통일된 것처럼 인접한 나라끼리 동군연합이 성립되었다가 결국 통일이 되는 일이 있었다. 다만 동군연합이 곧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이 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양쪽에서 똑같이 의원을 선출하거나 대통령을 선출하면 되지만, 인구가 많은 쪽이 정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두 지역간에 경제적이나 문화적이나 차이가 나는 점도 갈등 요인이 된다. 한쪽의 정치 제도가 민주주의가 아닌 전제주의인 경우 그쪽이 무력으로 적화통일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혁명으로 비민주적 정권이 무너져야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혁명이 일어난 뒤 동독에 새로 들어선 민주정권이 서독과 재통일을 하였다.

완전한 단일국가, 완전한 제도의 통일

서로간에 경제적 격차가 없고 제도가 유사하며, 국민들간의 가치관이 유사한 경우 가능한 통일방식이다. (벨기에) 플랑드르-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와 같은 예를 제외하면 실현이 어렵다.

인구가 적은 지역을 배려하는 방식의 통일

소선거구제/비례대표 제도로는 인구가 많은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 훨씬 많아져서 인구가 적은 지역 주민이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인구를 무시하고 동등한 의석을 할당하면 반대로 인구가 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반발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양원제와 같이 인구가 적은 지역에 좀 더 많은 비율의 의석을 할당한 상원과 인구에 비례하는 하원으로 나누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단원제로 한다고 해도 한국을 예로 든다면 남한 인구가 북한 인구보다 2배 이상 많지만, 의회에서는 2:1 정도로 인구가 적은 지역을 배려할 수 있다.

연방제 내지는 경제적 특례의 부여

어려운 지역에 대해 경제적인 특례를 부여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의료제도와 연금 제도를 서독의 제도로 통합하는 대신 동독 지역의 의료비나 연금액을 정부에서 보조해주었다.

사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적 능력이 적은 지역(동독)은 경제적 능력이 높은 지역(서독)에 비해 자원, 지가, 봉급 등이 상당히 저평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1]

한국 역사 속의 통일[편집]

요약

한국은 역사적으로 고조선, 통일 신라, 고려, 조선 등의 통일 국가가 존재해, 한반도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기원전 2333년부터 3,235년을 통일 상태로 있었고, 1,118년을 분단 상태로 존재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

삼국 간의 항쟁에서 백제에게 밀리고 있던 신라는 고구려와 제휴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이에 신라는 중국 대륙을 통일한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에 대항하고자 했다. 나당 동맹 이후, 신라는 백제를 공격하였는데, 그 사이 백제는 의자왕과 지배층의 향락 등으로 정치 질서의 문란이 생겨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고, 계백이 황산벌에서 이에 저항하였으나 얼마 못가 패배하였고, 660년에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했다. 고구려는 잦은 전쟁으로 국력의 소모가 심했고, 정치적 내분 분열이 있었다. 결국 당나라의 공격으로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를 이용해 한반도를 장악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야심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과 연합하여 당나라에 맞섰다. (나당 전쟁)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하는 한편, 백제 땅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였고, 이어 남침해 오던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격파해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당나라의 수군을 섬멸하여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옛 고구려의 영토인 대동강 이북과 만주 일대를 차지하지 못하였고, 외세의 도움을 받아 통일을 이루었으며, 뒤이어 한반도 북쪽과 만주 일대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들어서면서 남북국 시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살펴봤을 때, 신라는 완전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

9세기 말, 신라에서는 정치가 혼란해지고 전국 각지에서는 가혹한 조세 수취에 반발하여 농민 봉기가 발생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방 호족들이 신라 조정으로부터 독립하여 각자 자신의 세력을 키웠는데 그 중에서도 견훤과 궁예가 가장 강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이들은 주변 호족들을 통합하여,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건원칭제하기에 이르렀다. 견훤이 먼저 백제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백제'를 세웠고<'삼국시대 백제와'의 구별을 위해 보통 '후백제'로 부른다.>, 뒤이어 궁예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의 고려<고구려는 장수왕 이후에 '고려'라는 국호를 썼다. 아까와 같은 까닭으로 '후고구려'라고 부른다.>를 세웠다. 이로써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후삼국 시대라 부른다.

이후 궁예가 쫓겨나게 되었고,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왕건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고려<궁예가 철원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태봉'이라는 국호를 썼다.>,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였고, 서울을 송악(개성)으로 옮겼다. 왕건은 서울을 송악으로 옮김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적·군사적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후 왕건은 대외 정책에 있어 궁예와는 달리 친(親)신라 정책을 썼는데, 이는 견훤을 타도하기 위한 까닭이며, 신라의 전통과 권위의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얻으려고 한 것이었다.

이후,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에게 항복하였고, 자식들에 의해 절에 갇혔다가 탈출한 견훤이 고려에 귀순하자 왕건은 후백제를 멸망시켜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한편 926년 발해가 거란의 침략을 받고 멸망하자, 왕족을 비롯한 유민들을 대거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광복 이후

1945년 8월 15일, 38도선을 경계로 그 이남 지역의 자본주의와 그 이북 지역의 공산주의가 대립하였다. 몽양 여운형과 안재홍 등이 미군정의 후원으로 좌우합작위원회를 출범한 것과 백범 김구가 1948년에 남북협상을 이끌어낸 것 등은 한국 전쟁 이전에 한민족이 사상적인 통일을 이룩하려고 했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운형과 김구가 괴한에게 피습되고 남북(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각개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터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북의 대립은 대결로 표출되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 고위급 회담이 실시되었고,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는 남북 간의 정상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는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인해 남북간의 관계는 다시 싸늘해지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이러한 냉전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을 가하고 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여전히 대남 도발을 일삼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한반도 통일이 불가피한 추세이며, 통일이 한국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봤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30일 통일연구원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과 한·중 협력 방안' 국제포럼에서 "한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통일은 한국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말했다.[2]

남북통일

남북통일(南北統一)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국가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한국의 재통일(영어: Korean reunification)로 표현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세계의 경제, 정치 안보적으로 주는 영향이 크다. 통일된 한반도는 국가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가 국민 총생산 GNP의 90% 정도 이상을 차지하는 지나치게 높은 수출 주도형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 또한 폐쇄경제 및 개발도상국 수준의 사회주의 경제 구조를 가진 북한의 경제에도 남한의 경제 구조에 편입되어 자유무역, 시장개방 및 경제민주화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3]

각주[편집]

  1. 1.0 1.1 1.2 1.3 1.4  〈통일〉 《나무위키》
  2. 2.0 2.1  〈통일〉 《위키백과》
  3.  〈남북통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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