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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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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상수

상수(上水, potable water)는 마시거나 사용하기 위하여 수도관을 통하여 보내는 맑은 을 뜻한다. 마시기에 적합한 양질의 물이고 수도법에 그 수질 기준이 정해져 있다. 수돗물이라고도 한다.[1]

개요[편집]

상수도 표시

상수에서 상(上)을 올려주는 것을 의미하여 상수는 쉽게 말하며 올려주는 물, 즉 배관을 통해서 올려주는 물이다. 상세하게 이야기하면 으로 물을 공급하여 수도관을 통하여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다. 그냥 수질 기준에 맞는 수돗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전적 정의는 '음료수, 생활용수 등으로 쓰기 위하여 수도관을 통하여 보내는 맑은 물'이라고 되어 있다. 우물물이나 강물, 지하수 등은 식수의 자원이며 일정한 처리 기준과 시설에 의하여 공급해지면 상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전에는 상수라 할 수 없다.

상수를 보내주는 배관을 상수도라고 한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 설거지를 할 때, 샤워를 할 때, 혹은 공장에서 생산을 하거나 무언가를 세척할 때 상수도에서 물을 끌어와 사용하는 것이다.

집 앞이나 집 주변에 보면 사진과 같이 '상수도'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아래로 상수도 배관이 지나가고, 그 배관에서 우리 집으로 연결하여 집에서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마을인구가 적어 수지 타산을 따져 상수가 공급이 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을 파서 지하수로 물을 사용한다. 산속에 있거나, 주변에 마을 단지 형성이 크게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지하수를 파서 사용했다. 지하수 사용 시 약간의 흙물이 나온 경우도 있어서 이것은 사용 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 상수도가 없었을 때는 우물에서 혹은 에서 물을 길어와 사용했다. 지금도 간혹 TV나 중국의 오지(奧地) 지역을 보면 물을 길어와 사용하는 곳을 보곤 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우리는 집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냥 집에서 수도꼭지를 열면 깨끗한 물, 상수가 나온다.[2]

수돗물의 기원과 영향[편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는 기원전 312년 고대 로마의 아피아 거리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고대 로마 수도시설 기술의 우수성과 규모의 웅장함은 지금도 감탄할 정도이다.

305년 18km에 이르는 로마시대의 수로의 일부는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 로마가 공동 목욕탕, 분수대 등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수도에 기인한다. 예로부터 도시가 형성되고 번성했던 곳은 모두 물과 관련이 있었다.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더스 문명 모두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강을 중심으로 수로시설을 만들어냈다. 고대 도시를 번성시켰던 수돗물은 근대산업 발전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수도관이 높은 건물을 따라 설치가 가능해지자 건물을 높게 지어도 화재 예방을 할 수 있고 개수대, 욕조, 수세식 화장실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수도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수돗물은 인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던 터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의 씨앗이 되어 수로를 끊는 등 고대에 이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위생적인 수도 시설이 없던 지역에서는 해마다 수인성 전염병으로 생명을 잃고 있었다.

우물이나 개울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던 과거 영국은 콜레라가 번져 평균 수명이 26세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19세기 말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같은 수인성 병원균이 전염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혀지자 전 세계 도시에서 상수도와 하수도 시스템 설치를 본격화하여 1613년 영국 런던에서는 민간기업 ‘뉴 리버 수도 회사 (The New River)'가 전역에 수도관을 설치해 급수를 시작했고 프랑스는 1907년 오늘날 고도정수처리 공정에 사용되는 오존 공정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로써 평균수명이 늘게 되자 어떤 학자는 평균 수명의 연장이 의학의 발전보다는 수돗물의 보급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3]

우리나라 수돗물 역사[편집]

삼국시대-개항 이전[편집]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 관북리 궁궐터에서 기와 수도관이, 경주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토기로 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은 대부분 강이나 우물에서 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풍수지리를 중시하여 물이 풍부한 지역에 터를 잡아 생활했고 우리나라 땅은 화강암 지대가 많아 물이 깨끗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개항-1930년대[편집]

조선 후기 개항으로 우리나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외국 선박의 출입이 잦아지고 서울과 개항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거주자들이 늘어났다. 일본의 정략적인 일본인 이주 정책까지 더해져 서울과 부산, 인천 등 대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서울의 일본인 수는 3만 8천 명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서울 인구가 20만 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 규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인구가 몰리자, 그동안 사람들의 주 식수원이던 우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마저도 오염된 곳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상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1903년 고종황제는 미국인 콜브란(H. Collbran)과 보스트위크(H.R. Bo 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를 허가했다. 이후 1905년 특허권은 영국인이 설립한 조선(대한)수도회사에 양도되었고, 1908년 뚝도 정수장을 세우면서 서울에 본격적인 수돗물 공급이 시작됐다.

해방 후-1970년대[편집]

광복과 함께 상수도권을 회복한 우리 정부는 전국적으로 수도시설 확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배수지, 송수관, 펌프 모터, 급수전 등 거의 모든 수도시설이 파괴되는 아픔도 겪게 되었다.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로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자 상수도 시설의 확충이 시급해졌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춰 1961년 수도법이 제정되었고, 자본과 기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 차관을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급수 정책이 전개됐다. 1970년대는 수도권 광역상수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급수난이 크게 해소됐다.

1980-1990년대[편집]

1980년대를 전후로 수돗물 보급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1979년부터 한국수자원공사의 전신인 산업기지개발공사가 건설부에서 관리한 수도권 광역 상수도를 이관 받기 시작했다. 팔당댐으로 서울시와 인천시의 취수시설을 이전하여 양질의 원수를 2개의 지자체에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시대가 시작됐다.

1990년대에는 <맑은물종합대책> 수립 등 수돗물 서비스의 질을 향상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한 1994년부터 전국의 주요 정수장에 고도 정수시설이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편집]

2000년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수자원 확보 및 개발 사업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면서 공급 중심 물 관리정책은 한계에 봉착하였고, 그 대안으로 물 수요관리 정책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지속적인 급수 보급의 확대와 수요 관리에도 불구하고 도시 지역과 지역의 급수 격차 및 지자체 운영 능력 차이는 점점 더 심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성장을 거듭하는 세계 물 시장에서 국내 물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물 산업 육성 또한 수도정책의 주요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2016년 수립된 2025년 전국 수도종합 계획에도 이어져 공급 안전성 확도(공급 관리), 안심하고 마시는 수돗물(수질관리), 건전한 수도 사업(운영 효율화), 미래발전을 위한 상수도(물 산업 육성) 등을 4대 중점 목표로 설정하여 현재의 수도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 2000년 물 절약 종합 대책
  • 2006년 물 산업 육성방안
  • 2007년 제2차 전국 수도종합 계획, 물 수요관리 종합 대책
  • 2010년 물 산업 육성전략, 지방상수도 통합 추진계획, 상수관망 최적화 사업
  • 2016년 스마트 물 산업 육성전략, 2025년 전국 수도종합 계획
  • 2017년 지방 상수도 현대화 사업
  • 2018년 물 관리 일원화 (국토교통부 수자원 관련 업무 환경부 이관)[4][5]

수돗물 생산 과정[편집]

수돗물은 주로 흐르는 강물이나 에 모아둔 물을 사용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한강 등의 강과, 충주댐과 같은 댐을 통해 모은 물이 우리가 집에서 마시는 수돗물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흐르는 강물이나 댐에 모아둔 물을 깨끗한 수돗물로 만드는 것을 '정수 처리 과정'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취수, 응집, 침전, 여과, 소독, 급수의 6단계가 있다.

수돗물 생산 과정 약도

취수[편집]

취수는 깨끗한 수돗물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정수 처리 과정을 거치기 위하여 물을 모아 놓는 과정을 말한다.

응집[편집]

응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물질을 모아 큰 덩어리로 만든다. 강물 속에는 모래자갈 외에도 우리 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들이 섞여 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응집제를 넣는다. 응집제는 작은 물질들 주변에 달라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응집제를 넣은 후 물을 잘 저어주면 응집제가 이물질에 달라붙고, 응집제가 달라붙은 이물질들이 서로 엉켜서 점차 눈에 보일 만큼 큰 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물속의 이물질을 쉽게 분리해 낼 수 있다.

침전[편집]

침전은 이물질 덩어리를 가라앉혀 맑은 물로 만든다. 흙탕물을 떠서 가만히 두면 물속의 작은 흙 알갱이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윗부분에는 맑은 물만 남는 것을 볼 수 있다. 침전은 이처럼 응집제와 결합한 이물질 덩어리들을 바닥에 가라앉히는 것을 말한다. 가라앉은 이물질 덩어리는 바닥에 설치된 관을 타고 침전물 처리장으로 이동하고, 윗부분의 맑은 물은 다음 과정으로 이동한다. 이때 바닥에 가라앉은 덩어리들을 슬러지라고 하는데 물기를 제거해 시멘트 원료 등으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여과[편집]

여과지로 걸러내면 깨끗한 수돗물이 된다. 청정지역의 모래와 자갈을 이용해 걸러진 물은 이제 우리가 식수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깨끗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수돗물이 되기까지는 아직 다음 과정이 남아 있다.

소독[편집]

소독은 깨끗한 물을 지켜주는 예방주사이다. 수돗물에서 흔히 '수돗물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냄새의 정체는 바로 소독 과정에서 넣는 염소이다.

정수 처리 과정에서 염소를 넣는 이유는 수돗물이 땅속에 묻힌 수도관과 수도꼭지를 거쳐 가는 동안 만나게 될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염소는 수돗물이 수도관을 타고 우리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세균의 공격으로부터 물을 지켜주는 튼튼한 방패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미리 예방접종을 하는 것처럼 수돗물 역시 세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염소의 도움을 받게 된다.

급수[편집]

급수는 맑고 깨끗한 물이 우리 곁으로 오는 마지막 여행이다. 소독과정까지 마친 물은 안전하게 저장해 두었다가 학교 등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때 물을 저장하는 곳을 배수지라고 한다. 배수지는 보통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사람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각종 오염물질로부터 물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물을 흘러내려 보내면서 쉽게 운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수지의 물을 집과 학교, 회사 등 물이 필요한 곳으로 운반하는 과정을 급수라고 한다. 급수를 마지막으로 강물이 깨끗한 수돗물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도착하기까지의 긴 여행은 마침내 끝나게 된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상수〉, 《네이버 국어사전》
  2. CMS, 〈상수, 우수, 하수, 정화조 이야기〉, 《티스토리》, 2021-05-23
  3. 수돗물의 역사〉, 《남양주시》
  4. 우리나라 수도의 역사〉, 《케이워터》
  5. 한국의 상하수도〉, 《서울하수도과학관》
  6. 수돗물 생산 과정〉, 《음성군청》

참고 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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