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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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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학(鐵道工學, railway engineering)은 철도운영에 필요한 선로(線路), 차량(車輛), 전기운전설비(電氣運轉設費), 신호보안설비(信號保安設費), 정차장(停車場), 차량기지(車輛基地), 차량공장(車輛工場) 등 여러 설비와 그 운용에 대해서 공학적(工學的)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요[편집]

철도공학은 철도 선로, 차량, 건축물 등 철도 설비에 관한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수송 공학의 한 분야이다.

철도공학과는 철도 교통, 철도 선로, 철도 차량, 철도역 등을 제작하는 학과로써 연계되는 전공이지만 철도 기관사를 양성하는 철도운전관제과와 사실상 다를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의 대학 전공이 건축학부 철도공학 전공이다. 작중에서도 철도역 건축가로 활동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공학 전공이 인기가 더욱 높아지기도 했었다.

철도의 역사[편집]

철도의 기원[편집]

레일을 이용하여 짐수레를 사람이나 가축이 끌었던 일은 기원전에도 있었다. 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 코린트 해협의 수레길이 현재에도 증거로 남아 있다. 현대 철도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세계 최초의 운송수단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556년에 독일의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가 저술한 채광 야금기술의 체계적인 기록 《금속에 대하여》(De Re Metallica Libri xii) 중에 있는 탄차의 그림이다. 당시 선로는 널판지를 잇대어 만들었고 수레바퀴에 홈이 패여있지 않아 탈선하는 일이 잦았다.

16세기 무렵 광산에서는 무거운 광물을 실은 수레를 끌어 올리기위해 목제 레일과 말을 많이 이용하였다. 18세기초 독일 루트 지방의 석탄 작업장에서 홈이 패인 나무 바퀴를 갖춘 석탄운반용 수레가 사용되었다. 이외에 유물이나 문헌으로서 종종 언급되는 것들은 주로 광산에서 목제 내지 석제 궤도를 부설하고 그 위로 인력 혹은 축력으로 움직이는 수레를 다니게 하는 광산철도였다.

영국의 광산철도[편집]

광산철도와 철도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 북동부에는 광산철도 노선이 광범위하게 개설되어 '뉴캐슬 로드'라 불리울 정도였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17세기 말에 비해 19세기초에 석탄 수요가 열 배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광산에서 개별적으로 만들어지던 철도 시설물들은 점차 일정한 형태, 규격, 궤간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좀 더 효율적 활용을 위해 1726년 탄광 운영자 단체인 그랜드 얼라이즈는 공동 노선을 만들고 복선화하였다. 1750년 무렵부터는 목제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철제레일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초기 철도는 석탄처럼 무거운 광물을 탄광에서 강, 바다, 운하까지 효율적으로 운송하고자 하는 해묵은 고민을 해결하면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주로 말을 이용한 마차철도였으며 초기에는 석탄과 같은 광산 화물운송을 주로 하였고 점차 여객수송을 하기도 했다. 1807년 영국 웨일스 남부의 스완지멈블스를 잇는 8 킬로미터 철도는 정식으로 요금을 받고 승객을 운송하는 꼬마 열차를 운행하였는데, 12인승의 객차를 말이 끌어 움직였다.

증기 기관차의 발명[편집]

18세기말 제임스 와트가 기존의 증기 기관의 효율을 개선하여 광범위한 분야에 동력장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철도에도 증기 기관을 활용하는 방안이 시도되었다. 처음에는 특정구간에서 권앙기를 통해 화물열차를 와이어로 끌어당기는 식의 이른바 고정식 증기 기관을 사용한 강삭철도(케이블카) 형태로 이용되었다. 증기 기관을 이용하여 일반 도로용 자동차를 만들고자하는 시도는 프랑스 군사 기술자인 니콜라 퀴뇨(1725~1804)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대포를 끄는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시험주행에서 시속 4km로 운행했지만 벽에 부딪히며 뒤집어짐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다른 발명가들의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던중 1804년, 영국인 리처드 트레비식이 고압 증기기관을 개발하여 기관차를 만들었다. 시범운행에서 시속 8km로 9톤을 실은 화물차를 끄는데 성공했으나 주철로 만든 초기 레일(철로)이 5톤이나 나가는 무거운 기관차를 버티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며 추가 기술개발과 상업화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814년, 조지 스티븐슨이 상용 가능성이 있는 증기 기관차를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그는 훗날 지속적으로 영국 철도산업 발전에 기여하며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최초의 공공 철도[편집]

1825년에 공공 철도로서 최초의 노선인 스탁턴(Stockton) ~ 달링턴(Darlington) 사이 40km 철도가 영국에서 개통되었다. 이때 스티븐슨이 제작한 로코모션호가 90t의 열차를 견인하여 속도 20km/h 정도를 내었다. 초기에는 주로 석탄만을 증기 기관차로 수송하였는데, 기관차의 고장이 빈번하기로 악명이 높고 신뢰성이 낮았다. 1830년, 무역항 리버풀과 면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 간 약 45km의 거리에 복선 철로가 개설되었다. 40km/h 속도로 달리는 이 철도는 개통 후 첫 3년 동안은 하루에 평균 1100명의 승객을 태우는 등 대성공을 거두며 운송혁명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 철도가 개통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산업의 발전[편집]

1880년대 철도의 전철화는 트램웨이(tramway)와 고속 운송 시스템으로 시작되었다. 1940년대부터 증기기관차는 디젤 기관차로 대체되었고, 2000년대에는 증기기관차가 드물어졌다. 1960년대에 전기 고속철도 시스템이 일본과 이후 일부 다른 국가에 도입되었다. 많은 국가에서 환경 문제로 인해 디젤 기관차를 전기 기관차로 교체하는 과정에 있다. 스위스에서는 네트워크를 완전히 전기화했다. 모노레일이나 자기부상열차처럼 전통적인 철도의 정의를 벗어난 지상 교통수단도 시도되었으나 실제 운행에는 제약이 따랐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자동차와 비행기와의 경쟁으로 인해 쇠퇴했던 철도 운송은 도로 혼잡과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부활했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CO2 배출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철도에 투자했다. 이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철도기술[편집]

4차산업혁명 시대, 철도산업도 예외는 아니며 고속화와 차량 기술, 안전 기술, 유지보수 기술, 운영기술 등 철도기술의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다. 현 시대에서는 IoT나 AI, 빅데이터의 활용에 의한 효율화나 생산성의 향상이 강조되고 있다. 철도산업도 이 기술을 바탕으로 '모빌리티 혁명'에 도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이 더욱 확장된 개념으로 속도, 범위,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시대로 속도(Velocity)의 차원에서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빠른 속도의 획기적 기술 진보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범위(Scope) 차원에서 각국의 전산업 분야에서 파괴적 기술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System Impact) 차원에서 생산, 관리, 지배구조 등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시스템의 큰 변화가 예상되며, 4차 산업혁명에서는 무인 운송수단, 인공지능, 3D 프린팅,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주요기술이 융합되어 새로운 기술이 창출될 전망이다.

철도교통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혁신기술의 발달로 철도ㆍ교통시설의 이용을 극대화 하고 교통수단의 수송효율을 높이는 한편, 국민의 교통편의 증진과 교통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교통체계의 운영ㆍ관리를 자동화ㆍ과학화하는 체계로서 철도교통에 전자ㆍ통신ㆍ제어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여 철도ㆍ교통시설과 수단의 실시간 관리 및 제어를 수행하는 환경 친화적 미래형 교통체계로 대전환이 예상된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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