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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호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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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호프만(Max Hoffman)

맥스 호프만(Max Hoffman, 1904년 11월 12일 ~ 1981년)은 미국의 자동차 수입 회사인 호프만모터카(Hoffman Motor Car)의 설립자 겸 대표였다. 그는 1930년부터 자동차 딜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 호프만모터카(Hoffman Motor Car)를 설립하고 유럽산 자동차를 미국에 들여와 팔기 시작하고 1950년대부터 독일 브랜드의 미국 독점 수입권을 이용해 미국차와 독일차 업계 사이에서 큰 손으로 활약하였으며 시장의 흐름을 읽고 팔릴만한 자동차를 제조사에 요청해 미국에 팔 특별 모델을 제작하여 유명하다.[1] 2003년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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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맥스 호프만은 1904년 11월 12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부터 자동차 딜러로 활약하였는데 처음에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유럽에 팔았다. 2차 대전에 유럽이 휘말리기 직전인 1941년 미국으로 건너와 보석상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46년 자신의 성을 딴 수입 회사 호프만 모터카를 설립하고 유럽산 자동차를 미국에 들여와 팔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제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으며 자동차를 찍어내기 무섭게 팔려나가던 시절이며 유럽산 물건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유럽산 자동차를 미국에 수입해서 팔기에는 최적의 시대였다.

맥스 호프만은 다양한 유럽 브랜드를 미국에 들여왔으며 수입한 브랜드만 해도 폭스바겐, 재규어,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BMW, 알파로메오, 피아트 등 유럽의 자동차 브랜드가 그의 손을 거쳐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단순한 수입상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의 흐름에 맞춰 미국에서 팔 자동차를 본사에 역으로 제안하는 마케터이기도 하다. 그중 BMW 507과 벤츠 300SL이 좋은 예이다.

호프만은 자동차 판매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독점 수입권을 이용하여 다시 자동차 회사와 거래하며 돈을 벌었다.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략 변화에 기인한다. 단순히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를 딜러에 맡기기보다 직접 북미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 판매와 더불어 여러 사업을 펼치는 쪽이 더 이익이 된다는 부분에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57년 호프만의 수입권을 200만 달러(현재가치 약 200억 원)를 주고 되샀다. 이후 호프만은 다른 브랜드를 하나씩 정리하고 BMW에 집중했다. 1950년대부터 BMW의 수입을 시작한 그는 1960년부터 1975년 3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BMW의 독점 공급권을 유지했다.

맥스 호프만은 BMW가 북미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본능적으로 시장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수립했다는 표현이 걸맞겠다. 그와 함께한 BMW는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둘은 법정 다툼을 벌였다. 거래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합의에 이르렀다. 정확한 합의 내용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았다. BMW를 마지막으로 자동차 사업을 정리한 맥스 호프만은 평소 관심을 두던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하며 여생을 즐기다 1981년 8월 9일 7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북미 자동차 시장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3년에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주요 활동[편집]

BMW 507[편집]

BMW 507

1954년, BMW는 전쟁 이후 독일 메이커로서는 처음으로 V8 엔진을 개발해 양산에 들어갔다. 미국 시장을 노리던 BMW는 성능 좋은 V8 엔진에 유럽 메이커의 기술을 접목하여 뛰어난 스타일의 보디를 갖추면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자적인 디자인을 계획했다. 하지만 BMW의 미국 딜러였던 맥스 호프만의 생각은 달랐다. 호프만은 디자이너들이 좀 더 미국적인 시각을 갖고 미국 시장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맥스 호프만은 BMW에게 아주 멋진 로드스터를 요구했다. 이를 수락한 BMW는 자사 최초의 2인승 로드스터인 "507"을 선보였다. 수려한 디자인과 BMW 특유의 주행 성능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오늘까지도 BMW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 모델이다. 호프만은 이를 위해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일 출신 디자이너 알브레히트 괴르츠와 접촉했다. 54년 말 괴르츠는 마침내 두 가지 디자인 제안을 내놓았고 BMW는 두 가지 모두를 받아들였다. 괴르츠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503 카브리올레와 507은 5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공개되었다. 2+2 시트를 갖춘 503 카브리올레와 달리 정통 2인승 로드스터 507은 완벽한 스포츠카였다. BMW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히는 507의 과감한 디자인은 503의 우아함을 뛰어넘었다.

502 세단의 길이를 줄인 507의 섀시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기어박스를 새로 배치해야 했지만 핸들링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가벼워진 차체는 V8 2.6X 엔진과 어울려 최고출력 150마력/5,000rpm, 최고시속 200km, 제로백 8.8초의 고성능을 이끌어냈다. 507은 화려한 외관과 뛰어난 성능에다 독창성까지 모든 것을 지닌 차였지만 값이 너무 비쌌다. 맥스 호프만은 미국 시장에서 507의 값을 5천 달러로 계산했지만 수작업이 많은 제작 특성상 차 값은 9천 달러에 근접할 정도로 올라갔다. 56년부터 58년까지 3년 동안 만들어진 507은 불과 257대였다.507의 적은 판매 대수는 당시 혹평을 받았던 세단의 실패와 맞물려 BMW를 압박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터사이클용 엔진을 얹은 소형차 이제타였다. 이제타의 성공은 오늘날 BMW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이로 인해 50년대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로 꼽혔던 507은 생산 라인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BMW는 40여 년이 흐른 뒤 Z8을 개발해 507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3]

벤츠 300SL[편집]

Mercedes-Benz 300SL

갈매기가 날개를 편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걸윙 도어(Gull-wing) 도어는 자동차 역사상 세계 최초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SL로부터 시작되었다.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은 메르세데스-벤츠 최초의 양산형 스포츠​카이다.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은 처음부터 양산을 목표로 만들어진 차는 아니며 그 실체는 1분, 1초를 다투는 레이스를 위한 자동차이다. 300SL은 양산화에 돌입하기 2년 전인 1952년에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다. ​레이스를 위한 종마로 태어난 300SL이 양산화로 발길을 옮기게 된 데는 당시 메르데세스-벤츠​의 판매를 맡고 있었던 맥스 호프만의 사업적 눈썰미 덕분이다. 뉴욕에서 벤츠 판매업을 하던 그는 미국의 부호들과 스포츠카 수집광 등이 300SL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을 파악하고 메르세데스-벤츠에 양산화를 제안한 것이다.

300SL은 밀레 밀리아, 르망 24시 등 다양한 자동차 경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주목한 호프만은 300SL의 도로용 버전을 요구했다. 벤츠는 총 1,400대의 300SL을 생산했고 이 중 1,000대를 미국에서 팔았다. 당시 가격은 7,295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7,280만 원이다. 경주차를 양산차로 바꿔놓은 300SL을 1,000대씩이나 판 건 당시 미국에 스포츠카 붐이 일어서다. 3.0리터 6기통 엔진을 얹어 최고 출력 215마력과 최대 토크 28.0kg.m의 성능을 지닌 당시 최고 성능의 스포츠카였다. 여기에 양산차 최초로 가솔린 직분사 방식을 채택했던 모델이기도 했다. 변속기는 4단 수동 변속기를 달았고 가벼운 차체와 뛰어난 동력 성능으로 약 260km/h의 최고 속도를 자랑했다. 이는 당시 시판 중인 양산차 기준으로 가장 빠른 것이었다.[4]

포르쉐 로고[편집]

포르쉐(Porsche)

1952년 미국에 포르쉐를 처음으로 수입한 맥스 호프만(Max Hoffman)은 당시 미국의 자동차 시장 선호에 맞추어 포르쉐의 앰블럼을 만들기를 원했고 호프만과 함께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페리 포르쉐는 냅킨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중앙에는 포르쉐의 본사가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문장을 그리고, 그림의 바깥쪽에는 슈투트가르트를 수도로 했던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문장으로 그렸다. 냅킨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탄생한 포르쉐의 엠블럼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독일의 슈퍼카를 대표하는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5]

각주[편집]

  1. "Max Hoffman", "wikipedia"
  2. 로드테스트, 〈최고의 자동차 장사꾼, 맥스 호프만〉, 《네이버 포스트》, 2017-05-03
  3. "BMW 507", 《나무위키》
  4. 김상혁, 〈하늘을 날것 같은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 300SL〉, 《모토야》, 2017-12-18
  5. 김한용, 〈포르쉐 로고의 역사, 냅킨에서 가장 비싼 상표까지〉, 《모터그래프》, 2014-01-23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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