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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환'''(河東煥, He Dong Hwan, {{발음|河東煥}}, 1930년 7월 29일 ~ 2018년 5월 27일)은 서울의 드럼통 버스왕이라 불리던 자동차 기술자이며 '''[[쌍용자동차]]''' 모태인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하동환 자동차제작소-->를 설립한 한국 자동차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8F%99%ED%99%98 하동환]〉,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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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환'''(河東煥, He Dong Hwan, {{발음|河東煥}}, 1930년 7월 29일 ~ 2018년 5월 27일)은 서울의 드럼통 버스왕이라 불리던 자동차 기술자이며 '''[[쌍용자동차㈜]]''' 모태인 '''[[동아자동차공업㈜]]'''와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하동환 자동차제작소-->를 설립한 한국 자동차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8F%99%ED%99%98 하동환]〉,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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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일 (일) 11:10 기준 최신판

하동환(河東煥)
쌍용자동차㈜(Ssangyong Motor)

하동환(河東煥, He Dong Hwan, hé dōng huàn, 1930년 7월 29일 ~ 2018년 5월 27일)은 서울의 드럼통 버스왕이라 불리던 자동차 기술자이며 쌍용자동차㈜ 모태인 동아자동차공업㈜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설립한 한국 자동차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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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 대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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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하동환은 1930년 7월 29일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10대 때부터 서울 신촌의 자동차 정비 공장 기술자로 일하며 자동차를 연구했다. 자동차의 편리함이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 확신한 그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1954년 1월 24살에 미군이 남기고 간 폐차를 뜯어내 직접 자동차를 제작하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은커녕 국민들의 생존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신기함과 편리함이 앞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것으로 본 청년 하동환은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폐차된 미군 차량을 수집하고, 조사하고, 뜯어보고, 연구하며 자동차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마침내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河東煥自動車製作所)를 설립하고 미군 트럭에서 떼어낸 엔진변속기, 드럼통 철판을 입혀 버스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전후 공공 인프라가 필요했던 국내 상황에 꼭 필요한 자동차였기에 그가 제작한 버스는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훌륭한 성장 동력이 되었다.

1950년대 이후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은 버스였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버스는 인기가 좋은 교통수단이었지만 당시 국내에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어 그 수가 많지 않았다. 항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버스 제작을 통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동차를 생산해 내던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설립이 채 10년이 되지 않은 1962년 하동환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로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하게 되었다. 창업 당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했던 작은 창고는 구로동 2천 평(6600㎡) 규모의 국내 최초 버스 전문 공장으로 규모를 넓히고 하루 평균 2대씩을 생산할 수 있었던 조립라인 또한 변화했다. 당시로서는 최고 설비를 갖춘 공장의 생산 라인과 각 전문가들의 손길로 탄생한 하동환 자동차 공업의 버스들은 국내 버스 업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1960년대 서울 시내버스의 70%가 하동환 자동차 공업의 버스였다는 사실을 보면, 당시 버스 제작에 있어 그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기업의 성장과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에 큰 기여를 한 하동환은 그 공을 인정받아 1965년 12월 전국 모범기업체 표창 대회에서 교통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66년에는 동남아 석유 부국인 브루나이에 하동환 자동차 공업이 설계하고 제작한 버스를 수출했다. 현대자동차포니보다 10년 앞선 국내 최초 자동차 수출 기록이다. 하동환 버스는 1967년 베트남에도 수출했고, 이후 리비아 등지에도 선보였다. 1967년에 상공부의 자동차 산업 계열화 정책으로 신진자동차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신진자동차에서 생산하던 토요타 버스를 위탁 생산하다가 1975년에 다시 신진자동차에서 독립하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4년 지프 차량 개발에 이어 소방차 등 특수자동차로 발을 넓힌 그는 1977년 사명을 동아자동차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자회사 동아정기를 세웠고 1979년에 지금의 평택공장을 준공하였다. 1984년 코란도를 출시한 거화를 인수한 이후 코란도를 일본에까지 수출했고, 트랙터와 고속버스 등을 생산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무차입 경영을 선호했던 그는 외부자금을 조달해 자동차 연구개발에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부담을 느꼈고,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고 투자 여력이 큰 쌍용그룹에 1986년 회사를 매각했다. 회사 매각 후 하동환은 트레일러를 생산하는 동아정기를 운영했고, 인재 육성을 위한 한원장학회를 운영함과 동시에 한원그룹을 설립하였다. 1993년에는 미술 분야를 키우기 위해 한원미술관도 설립했다.

하동환은 한원그룹 명예회장으로 지내다가 2018년 5월 2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2][3][4]

각주[편집]

  1. 하동환〉, 《위키백과》
  2. 쌍용자동차〉, 《나무위키》
  3. 24세 청년이 맨 손으로 일군 자동차회사,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아시나요〉, 《쌍용자동차 블로그》, 2017-03-20
  4. 함종선, 〈쌍용차 원조인 동아차 창업자 하동환 회장 별세〉, 《중앙일보》, 2018-05-2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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