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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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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woen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1월 24일 (화) 18: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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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 일본어: 三菱ふそう)는 일본의 버스와 트럭 메이커이자 일본의 자동차 제조 기업의 하나다. 미쓰비시후소는 회사명의 약칭이며 자세한 회사명은 미쓰비시후소트럭 버스 혹은 미쓰비시후소트럭 버스주식회사(일본어: 三菱ふそうトラック・バス株式会社 미츠비시 후소오 토랏쿠 바스카부시키가이샤, 영어: Mitsubishi Fuso Truck and Bus Corporation, 약자: MFTBC)라고 한다. 1932년 미쓰비시조선의 고베조선소에서 일본 최초로 대형 자동차인 트럭과 버스, 산업 및 디젤 엔진을 생산하여 전 세계에 생산망과 판매망을 갖추고 있으며 2003년에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Mitsubishi Motors Corporation, 일본어: 三菱自動車工業)의 대형 상용차 부문이 분사해 설립했다.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가 출시한 구형 5t트럭(1990~1997), 현대 마이티, 현대 91A트럭, 현대 에어로버스, 현대 에어로시티, 현대 에어로타운 버스 등 다수의 현대자동차 제품은 미쓰비시 후소의 제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다임러 AG(Daimler AG)와의 자본제휴를 맺은 후 결별한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과 달리 미쓰비시 후소는 다임러 AG가 대주주이며 미쓰비시 그룹 각사와 자본 관계를 포함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쓰비시광보위원회(三菱広報委員会)의 기업이자 미쓰비시금요회(Mitsubishi Friday Conference, 三菱金曜会) 소속 기업이며 2011년 기준 일본 국내 상용차 판매율 3위이다. 현재 미쓰비시후소의 이사회 부회장은 카즈오 마츠나가(Kazuo Matsunaga)이며 회장 겸 대표이사는 하트무트 쉬크(Hartmut Schick)이다.[1]

개요

일본의 버스와 트럭 메이커인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는 1980년대까지 미쓰비시 자동차(Mitsubishi Motors, 미쓰비시자동차공업주식회사, 일본어: 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 소속이었으나, 현재 독일의 다임러 AG에 넘어간 상용차 회사로서 모기업인 다임러 AG가 소유하고 있는 지분은 89.5%라고 한다. 외국 기업이 지분을 많이 소유한 일본의 회사 중 하나로 프랑스의 르노(Renault)가 최대주주인 닛산자동차(Nissan)와도 비슷하다. 미쓰비시 그룹 내의 자동차 관련 브랜드들은 전부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 분리되었으며 상표만 공유한다. 즉,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는 상표권 공유 가능한 수준으로'만' 여전히 지분을 보유중이다. 1917년 일본 메이지 시대의 기업가인 이와사키 야타로(Iwasaki Yataro, 岩崎弥太郎)가 현 미쓰비시 중공업(Mitsubishi Heavy Industries, Ltd., 三菱重工業株式会社)인 미쓰비시조선(三菱造船)을 설립하였고, 1918년 미쓰비시조선은 미쓰비시 브랜드의 자동차 생산 시초인 ‘미쓰비시A형 승용차’ 개발을 완성하였으며 1932년 미쓰비시조선의 고베조선소에서 ‘B46형 가솔린 버스’인 후소(Fuso, ふそう)라는 이름을 가진 버스 개발을 완성하였다. 회사 명칭의 유래에서 사명(社名)인 후소(ふそう, 扶桑)는 「일본」을 뜻하는 고대 일본어. 1932년 미쓰비시조선(三菱造船, 지금의 미쓰비시 중공업)이 대형차 사업을 개시했을 때 사내 공모에 의해 결정됐다.

현대자동차그룹 상용차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회사이며 현대 상용차 부분을 발전시킨 일등공신이다. 현재도 뉴 슈퍼 에어로시티, 에어로타운은 그 플랫폼 그대로 개선하면서 현재까지 생산 중이다. 승용차 부분은 2009년에 1세대 에쿠스가 단종하면서 미쓰비시 자동차와의 기술제휴 관계를 청산했다.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AG, 다임러 벤츠)가 미츠비시의 이 부문을 인수한 계기는 원래 미쓰비시 자동차가 크라이슬러와 협력관계였을 때 다임러 벤츠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하며 협력관계였던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도 인수하여 대주주 자리에 올랐으나, 결국 크라이슬러와 결별하면서 미쓰비시 자동차의 주식을 털어내게 되고 미쓰비시 자동차와의 관계도 중단된다. 하지만 그때 같이 보유하던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여 앞으로도 다임러가 벤츠가 계속 소유중이다. 미쓰비시 그룹 내에선 승용 부문이 갈수록 비효율로 치닫고 있었고, 미쓰비시 자동차 전체에서 수익을 더 잘 내는 부문이 상용차 부문이었다. 승용차 부문에 비해 수익 및 생산에 효율이 있는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를 당연히 벤츠는 포기할 수 없었고, 미쓰비시 후소를 메르세데스-벤츠 상용차의 아시아 기지로 키워내기 위해, 지분인수를 늘려 자회사로 만들었다. 또한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나 하이브리드 버스, 트럭을 개발하였고, e-FUSO라는 이름의 전기차 전용 브랜드까지 론칭하였다. 현재 다임러 AG의 일원이 된 이후 점점 벤츠화되는 모습이 보이며 슈퍼 그레이트와 에어로에는 최신 벤츠 상용차량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이 적용되어 있고,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용 자동변속기인 MPS를 "시프트 파일럿(SHIFTPILOT)"이라는 이름으로 슈퍼그레이트와 에어로에 기본사양으로 도입하여 적용하고 있다.[2][1]

주요 인물

이와사키 야타로(Iwasaki Yataro)
하트무트 쉬크(Hartmut Schick)

이와사키 야타로

이와사키 야타로(Iwasaki Yataro, 일본어: 岩崎弥太郎, 1835년 1월 9일 ~ 1885년 2월 7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기업가이며 도사 번 몰락 향사(鄕士) 집안 출신의 사무라이이자 일본의 재벌로 미쓰비시의 창립자 겸 초대 총수이다. 그는 미쓰비시 재벌[三菱財閥]의 창설자라고도 하며 도사 번의 용달 역부터 시작해 메이지 시대에는 해운업, 무기 거래, 우편 서비스 등으로 큰 부를 쌓았고, 정경유착으로 독점적 이익을 누려 악명이 높다. 휘(諱)는 토시(敏) 혹은 히로시(寛), 아호(雅号)는 도잔(東山)이며 별명은 도사야 젠베에(土佐屋善兵衛), 야타로(彌太郎)이다. 그는 현 미쓰비시 중공업(Mitsubishi Heavy Industries, Ltd., 三菱重工業株式会社)인 미쓰비시조선(三菱造船)을 설립하였으며 이는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또한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의 후원을 받아 해운업을 독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정상(政商)으로 일본의 3대 재벌 가운데 하나인 미 쓰비시 재벌[三菱財閥]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어려서 도사 번의 유학자인 오카모토 네이호(岡本 寧浦)의 사숙인 홍우사(紅友社)에서 역사와 한시 등을 배웠다. 14세 때에 도사 번의 번주(藩主)인 야마우치 도요테루(山内豊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21세 때 그의 후원으로 에도(江戸)로 유학을 떠나 주자학자인 아사카 곤사이(安積艮斎)의 문하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일어나 곧바로 도사 번으로 돌아와 요시다 도요(吉田東洋)가 고치성(高知城)의 교외에 세운 소림숙(少林塾)에 들어가 그에게 학문을 배웠다. 그는 관립 동경상선학교(東京商船学校)가 됐다가 현재 국립 도쿄해양대학 해양공학부(東京海洋大学海洋工学部)가 된 전 미쓰비시 상선학교(三菱商船学校)를 설립하였고, 일본에 보너스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며 아랫연배 혹은 후배에게 한 턱 내는 것을 습관처럼 여겨, 이것을 가훈으로 이와사키 가문에 남겼다. 1882년 반 미쓰비시 세력이 공동 출자해 공동운송회사를 설립하고 당시 해운업을 독점하던 미쓰비시를 압박했으며 2년 여의 걸친 극한 경쟁 속에 운임이 미쓰비시 독점 시절 대비 10분의 1 정도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미국 계의 퍼시픽 메일(Pacific Mail) 사나 영국 계의 P&O[5] 사 등 외국계 운송 회사까지 그야말로 피튀기는 덤핑 경쟁 속에, 이와사키 야타로는 적송 화물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주는 '하위체금융(荷為替金融)'을 고안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와사키 야타로는 향년 51세에 위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친동생 이와사키 야노스케가 2대 미쓰비시 그룹 총수에 올랐으며 메이지 천황의 특별 지시로 귀족원 의원에 올랐다. 일본우선은 현재 미쓰비시 재벌의 모체가 됐으며 야노스케는 당시 일본 최대 그룹 총수로서 일본 은행 총재까지 겸임하였다.[3]

하트무트 쉬크

하트무트 쉬크(Hartmut Schick)는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의 회장 겸 대표이다. 그는 다임러 AG 경영 이사회의 멤버이자 다임러 트럭 AG(Daimler Truck AG) 아시아 지역 담당 및 바랏벤츠(Barat Benz)의 책임자이다. 하트무트 쉬크는 1961년 10월 5일 프로이덴슈타트(Freudenstadt)에서 고등학교와 아비투어(Abitur, 독일의 고등학교 졸업시험, 대학 입학 자격시험) 이후 그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 전 다임러-벤츠(Daimler-Benz AG)의 연구 개발 부서에 합류하였다. 그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AG)의 중형 버스 생산 부문 매니저, 현 에어버스 그룹(Airbus Group)인 도이치 에어로스페이스(Deutsche Aerospace, DASA)의 마케팅 담당 선임 관리자, 도이치 에어로스페이스 CEO 기업 사무실 책임자 및 선임 관리자, 다임러-벤츠 CEO 기업 사무실 책임자 및 선임 관리자, 메르세데스-벤츠 주이즈 데포라 공장/브라질 다임러의 생산 및 물류 담당 이사,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 AG)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 다임러와 다임러 버스 수석 부사장을 맡아 근무하였으며 2018년에는 다임러와 다임러 트럭 아시아 수석 부사장을 맡은 바 있다. 2019년 그는 다임러 트럭 이사회 멤버이자 아시아 지역 담당 및 바랏벤츠(Barat Benz)의 책임자를 맡았으며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의 회장 겸 대표로 임명되었다.[4]

역사

미쓰비시조선 시기

  • 1917년 : 미쓰비시조선(三菱造船) 설립.
  • 1918년 : 미쓰비시조선은 미쓰비시 브랜드의 자동차 생산 시초인 ‘미쓰비시A형 승용차’ 개발을 완성.
  • 1932년 : 미쓰비시조선의 고베조선소에서 ‘B46형 가솔린 버스’ 개발을 완성하여 버스명을 후소(ふそう)로 명명.

미쓰비시중공업 시기

  • 1934년 : 미쓰비시조선은 미쓰비시 중공업(Mitsubishi Heavy Industries, Ltd., 三菱重工業)으로 회사명을 변경.
  • 1937년 : 미쓰비시 중공업은 생산 거점을 도쿄제작소(현재 미쓰비시후소 가와사키제작소)로 이전.
  • 1946년 : 태평양전쟁 패전 후 초대형 ‘후소버스B1형 대형 본넷트’ 버스 발매.
  • 1950년 : ‘B25형 대형 본네트’ 버스 발매.
  • 1959년 : 일본 최초 국내양산 대형 ‘캡오버 8t트럭 T380형’을 발매하였으며 중형 트럭(3t) ‘쥬피터’를 발매하였다.
  • 1960년 : T330형 본네트형 8t차 발매.
  • 1961년 : T385형 캡오버형 8t차 발매.
  • 1962년 : AR820형 고속버스 발매.
  • 1963년 : 미쓰비시후소 소형 트럭의 기초를 세운 초대 캔터・T720형 발매.
  • 1967년 : 대형 트럭 T950형 발매.
  • 1970년 : 중형 트럭 T650형 발매.

미쓰비시자동차공업 시기

  • 1970년 6월 1일 : 미쓰비시 중공업의 자동차 부문이 분사되어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三菱自動車工業) 설립하였으며 미쓰비시자동차 사내에서 대형차 부문의 약칭은 ‘후소’ 혹은 ‘트럭・버스’ 설정.
  • 1973년 : 대형 트럭 F시리즈 발매 개시.
  • 1976년 : 중형 트럭 FK시리즈 발매 개시.
  • 1985년 : 미쓰비시 상사(三菱商事)와 공동 출자로 미국에 트럭 판매 회사 설립.
  • 1993년 : 크라이슬러(Chrysler)사와의 자본제휴 해제.
  • 1999년 : 볼보(Volvo)사와 트럭・버스 사업에 관한 자본・업무 제휴 계약 체결.
  • 2001년 : 트럭・버스 사업에 관한 전략적 제휴 파트너를 볼보에서 다임러로 변경.

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 시기

  • 2003년 1월 6일 : 미쓰비시자동차공업으로부터 트럭・버스 등의 상용차 부문과 산업 엔진 부문이 분사되어 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주식회사(Mitsubishi Fuso Truck and Bus Corporation, 약자: MFTBC) 설립.
  • 2004년 : 닛산자동차(日産自動車)에 소형차(캔터 로자)용 디젤 엔진의 OEM 공급을 개시.
  • 2006년 : 캔터 에코 하이브리드 판매 개시. 상용차 메이커 최초로 하이브리드카 시장에 잠입.
  • 2006년 4월 : (주)후소엔지니어링을 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주식회사에 통합.
  • 2007년 : 미쓰비시 후소 75주년.
  • 2009년 2월 : 2008년 연간 세계판매대수가 19만 7천대를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
  • 2009년 7월 : 러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러시아의 최대 상용차 제조회사 카마즈(KAMAZ)社와 트럭의 생산・판매 합병사업 설립 합의서에 조인. (주)후소테크니컬서비스를 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주식회사에 통합.
  • 2011년 : 메르세데스 벤츠 상용차부분 자회사 다임러 AG로부터 300억엔 증자.
  • 2012년 : 닛산자동차와 일본 국내시장용 소형 트럭의 상호 OEM 공급 기본 합의.
  • 2020년 5월 27일 : 미쓰비시 후소 트럭과 버스는 미국과 캐나다의 사업 상황을 재평가한 결과로 미쓰비시 후소 오브 아메리카(MFTA)는 새로운 트럭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1]

기술

각주

  1. 1.0 1.1 1.2 미쓰비시후소트럭 버스〉, 《위키백과》
  2. 미쓰비시 후소〉, 《나무위키》
  3. 이와사키 야타로〉, 《위키백과》
  4. "Curriculum vitae of Hartmut Schick", Daimler Truck AG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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