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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듀런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도적인 선구자였으며, 그는 한 회사가 여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프레드릭 스미스(Frederic Smith)와 루이스 쉐보레와 함께 제너럴 모터스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그는 프리기데어(Frigidai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윌리엄 듀런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도적인 선구자였으며, 그는 한 회사가 여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프레드릭 스미스(Frederic Smith)와 루이스 쉐보레와 함께 제너럴 모터스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그는 프리기데어(Frigidai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 생애
 
; 생애
1861년 윌리엄 듀란트는 미국 보스톤(Boston)에서 태어나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제재소 일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885년 24살이 되던 해 우연히 타본 마차에 매료되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마차를 만들던 곳을 인수해 버린다. 그는 플린트 카트 회사를 설립하고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3년 마차 제작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윌리엄에게 어느 순간 자동차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에게 자동차란 거칠고 시끄러운 물건으로만 보여 자신의 딸에게 조차 자동차를 타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사업가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윌리엄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모습, 그리고 안전에 관련한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자동차사업이 크게 성공하리라는 것을 직감하여 자동차 업계로 들어가 차의 생산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04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뷰익자동차를 매입하게 되었다. 1908년 윌리엄은 지엠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안에 자동차 회사들과 부품회사들을 하나씩 인수해 들여놨다. 뷰익, [[캐딜락]], [[올즈모빌]] 등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노스웨이 모터 앤 매뉴팩처링사와 스파트 플러그를 생산하는 챔피언 이그니션사 및 바퀴와 축을 생산하는 웨스톤 모트등이 그 대상이었다. 1910년 2년 만에 윌리엄은 25개 회사를 매입해 지엠의 골격에 적절하게 배치했다. 이런 개념은 그럴 듯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과잉팽창과 재정곤란으로 윌리엄은 결국 회사를 은행 컨소시엄에 넘겨야했다. 1911년 11월 3일 윌리엄은 절망하지 않았다. 뷰익의 레이싱 팀에 몸담고 있던 루이스 쉐보레를 자신의 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그는 루이스 쉐보레라는 이름을 따 ‘쉐보레 자동차’를 만들고 공동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1920년 결국 은행이 다시 개입하게 되면서 윌리엄은 지엠에서 두 번째 축출을 당하게 된다. 그의 모든 노력을 지엠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데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런 조직적 혹은 재정적인 골격이 없어 모든 노력이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1921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듀란트 자동차사를 설립하고 저가차량인 “스타(Star)"를 생산했지만 1933년 실패하고 1935년 부도가 났다. 그의 마지막 사업은 자동차가 아닌 볼링장 체인 사업 이였지만 그것마저도 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하는 불운을 겪으며 전 재산이 250불이라며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1947년 지엠이 주는 연금 형식의 돈으로 살아가다 타계한다.<ref>wlswn12u@carlab.co.kr, 〈[http://www.carlab.co.kr/news/2403 윌리엄 C 듀란트 (William Crapo Durant) 1861 - 1947]〉,  《카랩》, 2014-08-19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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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윌리엄 듀란트는 미국 보스톤(Boston)에서 태어나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제재소 일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885년 24살이 되던 해 우연히 타본 마차에 매료되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마차를 만들던 곳을 인수해 버린다. 그는 플린트 카트 회사를 설립하고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3년 마차 제작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윌리엄에게 어느 순간 자동차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에게 자동차란 거칠고 시끄러운 물건으로만 보여 자신의 딸에게 조차 자동차를 타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사업가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윌리엄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모습, 그리고 안전에 관련한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자동차사업이 크게 성공하리라는 것을 직감하여 자동차 업계로 들어가 차의 생산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04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뷰익자동차를 매입하게 되었다. 1908년 윌리엄은 지엠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안에 자동차 회사들과 부품회사들을 하나씩 인수해 들여놨다. [[뷰익]]((Buick)), [[캐딜락]](Cadillac), [[올즈모빌]](Oldsmobile) 등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노스웨이 모터 앤 매뉴팩처링사와 스파트 플러그를 생산하는 챔피언 이그니션사 및 바퀴와 축을 생산하는 웨스톤 모트등이 그 대상이었다. 1910년 2년 만에 윌리엄은 25개 회사를 매입해 지엠의 골격에 적절하게 배치했다. 이런 개념은 그럴 듯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과잉팽창과 재정곤란으로 윌리엄은 결국 회사를 은행 컨소시엄에 넘겨야했다. 1911년 11월 3일 윌리엄은 절망하지 않았다. 뷰익의 레이싱 팀에 몸담고 있던 루이스 쉐보레를 자신의 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그는 루이스 쉐보레라는 이름을 따 ‘쉐보레 자동차’를 만들고 공동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1920년 결국 은행이 다시 개입하게 되면서 윌리엄은 지엠에서 두 번째 축출을 당하게 된다. 그의 모든 노력을 지엠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데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런 조직적 혹은 재정적인 골격이 없어 모든 노력이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1921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듀란트 자동차사를 설립하고 저가차량인 '스타(Star)'를 생산했지만 1933년 실패하고 1935년 부도가 났다. 그의 마지막 사업은 자동차가 아닌 볼링장 체인 사업 이였지만 그것마저도 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하는 불운을 겪으며 전 재산이 250불이라며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1947년 지엠이 주는 연금 형식의 돈으로 살아가다 타계한다.<ref>wlswn12u@carlab.co.kr, 〈[http://www.carlab.co.kr/news/2403 윌리엄 C 듀란트 (William Crapo Durant) 1861 - 1947]〉,  《카랩》, 2014-08-19 </ref>
  
 
=== 루이스 쉐보레 ===
 
=== 루이스 쉐보레 ===
 
[[파일:루이스 쉐보레.jpg|썸네일|200픽셀|'''[[루이스 쉐보레]]'''(Louis Chevrolet)]]
 
[[파일:루이스 쉐보레.jpg|썸네일|200픽셀|'''[[루이스 쉐보레]]'''(Louis Chevrolet)]]
  
루이스 쉐보레는 스위스계 미국인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였으며, 1911년에 설립된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공동 설립자이며, 1916년에 설립된 프론테낙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이다. 쉐보레는 스위스 북서부의 시계 제조 중심지인 뉴차텔의 칸초프퐁에서 태어났다. 1886년, 쉐보레의 가족은 프랑스의 코트도르 주에 있는 발네(Beaune)에서 살기 위해 스위스를 떠났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젊었을 때 기계적인 기술과 자전거 경주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쉐보레는 1895년부터 1899년까지 로빈 메카닉샵(Roblin mechanics shop)에서 일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00년 캐나다 몬트리올으로 이주하기 전에 짧은 시간 동안 일하고 기계공으로 일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 그 다음 해, 그는 뉴욕에서 그의 동료 스위스 이민자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잠시 근무한 후, 디온 부턴의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의 브룩클린 영업부로 이사했다. 1905년에 그는 수자네 트레이유스(Suzane Treyvous)와 결혼했다. 같은 해에, 그는 경주용 자동차 운전자 피아트(FIAT)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리고 1907년, 쉐보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더 오토카 컴퍼니(The Autocar Company)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의 레이싱 경력은 [[뷰익]](Buick)을 위해 운전하면서 계속되었고, 뷰익의 주인 윌리엄 듀런트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렇게 그와 함께 제너럴모터스의 설립자가 된다.<ref >Louis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hevrolet</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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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쉐보레는 스위스계 미국인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였으며, 1911년에 설립된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공동 설립자이며, 1916년에 설립된 프론테낙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이다. 쉐보레는 스위스 북서부의 시계 제조 중심지인 뉴차텔의 칸초프퐁에서 태어났다. 1886년, 쉐보레의 가족은 프랑스의 코트도르 주에 있는 발네(Beaune)에서 살기 위해 스위스를 떠났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젊었을 때 기계적인 기술과 자전거 경주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쉐보레는 1895년부터 1899년까지 로빈 메카닉샵(Roblin mechanics shop)에서 일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00년 캐나다 몬트리올으로 이주하기 전에 짧은 시간 동안 일하고 기계공으로 일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 그 다음 해, 그는 뉴욕에서 그의 동료 스위스 이민자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잠시 근무한 후, 디온 부턴의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의 브룩클린 영업부로 이사했다. 1905년에 그는 수자네 트레이유스(Suzane Treyvous)와 결혼했다. 같은 해에, 그는 경주용 자동차 운전자 피아트(FIAT)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리고 1907년, 쉐보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더 오토카 컴퍼니(The Autocar Company)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의 레이싱 경력은 뷰익을 위해 운전하면서 계속되었고, 뷰익의 주인 윌리엄 듀런트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렇게 그와 함께 제너럴모터스의 설립자가 된다.<ref >Louis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hevrolet</ref>
 
; 쉐보레 설립
 
; 쉐보레 설립
 
쉐보레로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루이스 쉐보레의 명성이 워낙 높았고 발음도 좋아 듀런트가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결실을 맺은 쉐보레의 첫 모델 클래식 식스는 4.9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제법 큰 인기를 모았고 쉐보레 브랜드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쉐보레는 당시 최고의 경쟁자였던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1914년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차량 가격 490달러를 모델명으로 사용한 ‘490’은 1927년 100만대 판매 기록을 세우며 포드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만다. 쉐보레는 이후 콜벳, 카마로 등의 혁신적인 스포츠카와 머슬카를 개발하며 포드와 경쟁을 벌였고 소형차 쉬베트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는 이름으로 생산돼 국내에서 판매되기도 했다.<ref>김흥식 기자, 〈[http://www.autohera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45 레이서 출신의 루이스 쉐보레와 GM의 만남]〉,  《오토헤럴드》, 2013-01-03 </ref>
 
쉐보레로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루이스 쉐보레의 명성이 워낙 높았고 발음도 좋아 듀런트가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결실을 맺은 쉐보레의 첫 모델 클래식 식스는 4.9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제법 큰 인기를 모았고 쉐보레 브랜드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쉐보레는 당시 최고의 경쟁자였던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1914년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차량 가격 490달러를 모델명으로 사용한 ‘490’은 1927년 100만대 판매 기록을 세우며 포드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만다. 쉐보레는 이후 콜벳, 카마로 등의 혁신적인 스포츠카와 머슬카를 개발하며 포드와 경쟁을 벌였고 소형차 쉬베트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는 이름으로 생산돼 국내에서 판매되기도 했다.<ref>김흥식 기자, 〈[http://www.autohera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45 레이서 출신의 루이스 쉐보레와 GM의 만남]〉,  《오토헤럴드》, 2013-01-03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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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1911년 11월 3일 루이스 쉐보레와 윌리엄 듀런트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쉐보레 모터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1911년 11월 3일 루이스 쉐보레와 윌리엄 듀런트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쉐보레 모터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1912년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개발하고 생산했다. 쉐보레 브랜드의 첫 차량인 클래식 식스는 4.9리터 엔진을 장착하여 당시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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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개발하고 생산했다. 쉐보레 브랜드의 첫 차량인 클래식 식스는 4.9 리터 엔진을 장착하여 당시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1913년 쉐보레의 보타이(bowtie)가 회사 로고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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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쉐보레의 [[보타이]](bowtie)가 회사 로고로 채택되었다.  
*1914년,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490' 모델은 당시 차량 가격이 490 달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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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490' 모델은 당시 차량 가격이 490 달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루이스는 듀란트와 디자인에 대한 의견 차이로 듀란트의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1914년 루이스는 듀란트와 디자인에 대한 의견 차이로 듀란트의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1917년 거래가 성사된 뒤 듀란트는 제너럴모터스 사장으로 취임했고, 쉐보레는 별도 부문으로 지엠에 합병됐다.
 
*1917년 거래가 성사된 뒤 듀란트는 제너럴모터스 사장으로 취임했고, 쉐보레는 별도 부문으로 지엠에 합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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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스몰블럭 V-8 엔진을 발표했다.
 
*1955년 스몰블럭 V-8 엔진을 발표했다.
 
*1966년 머스탱에 빼앗긴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카마로를 전격 발표한다. 카마로는 나스카(NASCAR) 등 주요 레이싱 경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인기를 얻게 된다.
 
*1966년 머스탱에 빼앗긴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카마로를 전격 발표한다. 카마로는 나스카(NASCAR) 등 주요 레이싱 경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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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세대 '카마로(CAMARO)'가 출시됐다. 이는 5세대 카마로 '범블비'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노바(Nova), 베가 (Vega), 쉬베트(Chevette) 등 소형차를 발표하며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특히 쉬베트는 일본의 이스즈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 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다.
 
*1970년대에 노바(Nova), 베가 (Vega), 쉬베트(Chevette) 등 소형차를 발표하며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특히 쉬베트는 일본의 이스즈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 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다.
 
*1979년 쉐보레는 1억 번째의 쉐보레 차량을 생산했다.
 
*1979년 쉐보레는 1억 번째의 쉐보레 차량을 생산했다.
 
*1984년 쉐보레 최초의 소형차(Sprint) 출시를 시작으로 카발리에(Cavalier), 말리부(Malibu), 에퀴녹스(Equinox) 등 소형차에서 중대형, SUV, 픽업 트럭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1984년 쉐보레 최초의 소형차(Sprint) 출시를 시작으로 카발리에(Cavalier), 말리부(Malibu), 에퀴녹스(Equinox) 등 소형차에서 중대형, SUV, 픽업 트럭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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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지엠에서 쉐보레 '[[스파크]]'를 대우 [[티코]]를 대신하여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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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스파크 2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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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지엠 100주년 행사에서 [[볼트]] 양산차량을 공개했다.<ref>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696 스타일과 성능을 모두 겸비한 쉐보레의 역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0-05-09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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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스파크 3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
 
*2011년 전기차 쉐보레 볼트를 통해 북미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ref>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1344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불러야 하는 까닭은?- 쉐보레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1-01-25 </ref>
 
*2011년 전기차 쉐보레 볼트를 통해 북미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ref>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1344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불러야 하는 까닭은?- 쉐보레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1-01-25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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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레곤의 시장에 한정 생산형 전기자동차 쉐보레 [[스파크 EV]]가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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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4세대 스파크가 공개됐다. 2015년 4분기에 판매되기 시작했다.<ref>Chevrolet Spar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hevrolet_Spark#Fourth_generation_(M400;_201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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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사거리가 200mi(320km)를 넘는 최초의 저가형 양산형 전동차인 쉐보레 [[볼트 EV]] 생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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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쉐보레 볼트는 올해의 모터트렌드카상, 2017년 올해의 오토가이드닷컴 리더스 초이스 그린카, 구매 베스트카 보고, 그린카 저널의 2017년 올해의 그린카 등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타임 매거진 베스트 25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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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업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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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쉐보레는 1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11년 전 세계 판매량은 476만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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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메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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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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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다른 지엠 브랜드와 쉐보레라는 플랫폼의 쉐보레 모델을 혼합하여 보유하고 있다. 이 모델들은 미국 쉐보레, 한국지엠, 멕시코 그리고 다른 곳에서 기원되어 왔다. 오펠 소싱 차량의 예로는 벡트라, 아스트라, 코르사, 메리바, 자피라, 캡티바(오펠 안타라) 등이 있다. 멕시코는 또한 셰비(Chevy) C2와 같이 그들 소유의 몇몇 차들을 가지고 있다. 셰비 C2는 재작업된 구세대 콜사(Corsa) B이다. 미국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은 아발란체, 교외, 이쿼녹스, 타호, 샤이엔(실버라도와 유사), 아베오, HHR, 트레버스, [[말리부]], 카마로, 콜벳 등이다. 한국지엠이 한국에서 조립한 쉐보레 [[옵트라]]는 멕시코에서도 판매됐다. 유럽 [[에피카]]는 비즈니스 전용 차량으로 판매되었다. 지엠은 또한 주로 미국과 캐나다 등 다른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 멕시코의 교외와 아발란체 같은 쉐보레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ref name="위키피디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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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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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맥러플린(McLaughlin)은 캐나다의 쉐보레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 1918년 그는 당시 제너럴모터스의 사장이자 쉐보레 모터사의 소유주였던 듀란트의 인가를 받아 제너럴 모터스의 이사 겸 부사장이 되기 전에 캐나다 제너럴모터스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합병했다. 맥러플린 부부는 캐나다 회사의 소유권을 위해 지엠 주식을 받았고, 워크어빌과 캐나다 제품을 짓는데 1,000만 달러를 받았으나 소유권은 없었다. 캐나다 지엠은 캐나다 자동차, 트랙터 및 제너럴 모터스의 1919년 캐나다 자동차, 트랙터 및 이행이 전적으로 주목하는 민간 자회사로 자산, 수익, 이익 등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지엠은 역사적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기업 중 하나로 1975년에 세 번째 대기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BCE, 조지 웨스턴 유한회사, 캐나다 왕립 은행과 같은 몇몇 상장기업과 비교된다. 캐나다 제너럴모터스는 1989년 온타리오 호수 해안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열었다. 그것은 401번 고속도로의 고정장치로서 보통 거대한 유리 심방 위에 신차의 거대한 그림을 보여 준다. 이것은 제너럴모터스 사의 임대 구조로 오늘날 제너럴모터스라고 불린다. 캐나다의 제너럴모터스는 오샤와에 있는 리치몬드 거리에 그들의 첫 번째 사무실을 지었고 1919년부터 캐나다의 대형 제너럴 모터스 사인이 있었다. 맥러플린 식물은 그곳에 있었고 맥러플린 가족에 의해 사임했다. 2009년 4월 27일, 캐나다 지엠은 모기업의 극심한 자금난에 대응하여 2014년까지 캐나다 일자리의 절반 이상을 줄이고 캐나다 대리점의 40%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제너럴모터스(미국)가 파산한 후 캐나다 내 가맹점을 약 709개 대리점에서 약 470개로 줄였다. 캐나다 정부는 2009년에 매입한 제너럴 모터스 주식의 12%를 2015년 초에 매각했다.<ref>General Motors Canad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Motors_Canada</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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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hevrolet
 
*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hevrolet
 
* Louis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hevrolet
 
* Louis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hevro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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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eral Motors Canad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Motors_Canada
 
* 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696 스타일과 성능을 모두 겸비한 쉐보레의 역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0-05-09
 
* 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696 스타일과 성능을 모두 겸비한 쉐보레의 역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0-05-09
 
* 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1344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불러야 하는 까닭은?- 쉐보레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1-01-25  
 
* 하고싶은대로, 〈[https://blog.gm-korea.co.kr/1344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불러야 하는 까닭은?- 쉐보레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1-01-25  

2020년 9월 7일 (월) 19:28 판

쉐보레(Chevrolet)
쉐보레(Chevrolet)

쉐보레(Chevrolet)는 1911년부터 출시된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자동차 상표 중의 하나이다. 제너럴모터스 브랜드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셰비'(Chevy)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옛 대우자동차의 승용차 부문이 제너럴모터스에 매각된 이후 흡수되어 현재 한국지엠을 통하여 브랜드가 진출되었다. 쉐보레는 20가지 이상의 자동차를 판매하고 다양한 버전의 모델을 자국 시장에 판매하고 있고, 승용차와 중형 트럭 시장에서 유명하다. 대표적인 픽업 트럭으로는 실버라도가 있다.

개요

쉐보레는 1911년 11월 디트로이트에서 지엠의 설립자였던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와 경주차 레이서 루이스 쉐보레(Louis Chevrolet)에 의해 설립되었다. 회사의 이름을 '쉐보레(Chevrolet Motor Car Company)'로 지은 것은 당시 루이 쉐보레가 레이서로서 명성이 높았고, 쉐보레라는 발음이 듣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14년, 쉐보레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파란색의 '보타이(BOWTIE)' 로고가 최초로 등장했다. 보타이 로고는 1930년대 후반 여러가지 다양한 모양의 보타이 엠블렘이 개발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1] 설립 초기부터 쉐보레는 일반적으로 고가의 차량에만 적용되던 기술과 사양들을 합리적인 가격대의 차량과 트럭들에 적용해 왔다. 최초의 쉐보레 모델인 '시리즈 C 클래스 식스(six)' 모델에는 전기 시동 장치와 헤드램프를 탑재했는데, 이 기능들은 당시 최고급 차량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양이었다. 그 이후 수십년간 세이프티 글래스, 연료 분사식 엔진, ABS, 그리고 전자식 차체 안정화 시스템처럼 고가의 차량에만 적용되던 혁신적 기술들이 쉐보레의 대중적 모델들에 적용되었다.[2] 쉐보레 브랜드 차량은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2005년 쉐보레는 한국 지엠대우가 만든 자동차를 주로 유럽에서 재출시했는데, 이는 제너럴모터스가 쉐보레(Chevrolet)를 중심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시도에 뿌리를 둔 움직임이었다. 유럽에 쉐보레가 재도입되면서 지엠은 쉐보레를 주류 가치 브랜드로 삼고, 지엠의 전통적인 유럽 표준 비어인 독일의 오펠과 영국의 보크홀은 시장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엠은 2013년 말 카마로와 코르벳을 제외한 브랜드가 2016년부터 유럽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을 뒤집었다. 쉐보레 차량은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주에서 계속 시판될 예정이었다. 제너럴모터스가 2011년 지엠대우를 완전 인수해 한국지엠을 만든 뒤, 대우차 브랜드의 마지막 사용처가 본고장 한국에서 중단되고 쉐보레가 뒤를 이었다. 북미에서 쉐보레는 준중형 승용차부터 중형 상용 트럭까지 다양한 차량을 생산해 판매한다. 제너럴 모터스의 글로벌 마커 중 하나로 쉐보레가 유명하고 이름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쉐보레, 셰비는 제너럴 모터스나 그 제품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3]

주요 인물

윌리엄 듀런트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

윌리엄 듀런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도적인 선구자였으며, 그는 한 회사가 여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프레드릭 스미스(Frederic Smith)와 루이스 쉐보레와 함께 제너럴 모터스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그는 프리기데어(Frigidai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생애

1861년 윌리엄 듀란트는 미국 보스톤(Boston)에서 태어나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제재소 일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885년 24살이 되던 해 우연히 타본 마차에 매료되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마차를 만들던 곳을 인수해 버린다. 그는 플린트 카트 회사를 설립하고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3년 마차 제작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윌리엄에게 어느 순간 자동차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에게 자동차란 거칠고 시끄러운 물건으로만 보여 자신의 딸에게 조차 자동차를 타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사업가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윌리엄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모습, 그리고 안전에 관련한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자동차사업이 크게 성공하리라는 것을 직감하여 자동차 업계로 들어가 차의 생산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04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뷰익자동차를 매입하게 되었다. 1908년 윌리엄은 지엠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안에 자동차 회사들과 부품회사들을 하나씩 인수해 들여놨다. 뷰익((Buick)), 캐딜락(Cadillac), 올즈모빌(Oldsmobile) 등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노스웨이 모터 앤 매뉴팩처링사와 스파트 플러그를 생산하는 챔피언 이그니션사 및 바퀴와 축을 생산하는 웨스톤 모트등이 그 대상이었다. 1910년 2년 만에 윌리엄은 25개 회사를 매입해 지엠의 골격에 적절하게 배치했다. 이런 개념은 그럴 듯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과잉팽창과 재정곤란으로 윌리엄은 결국 회사를 은행 컨소시엄에 넘겨야했다. 1911년 11월 3일 윌리엄은 절망하지 않았다. 뷰익의 레이싱 팀에 몸담고 있던 루이스 쉐보레를 자신의 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그는 루이스 쉐보레라는 이름을 따 ‘쉐보레 자동차’를 만들고 공동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1920년 결국 은행이 다시 개입하게 되면서 윌리엄은 지엠에서 두 번째 축출을 당하게 된다. 그의 모든 노력을 지엠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데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런 조직적 혹은 재정적인 골격이 없어 모든 노력이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1921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듀란트 자동차사를 설립하고 저가차량인 '스타(Star)'를 생산했지만 1933년 실패하고 1935년 부도가 났다. 그의 마지막 사업은 자동차가 아닌 볼링장 체인 사업 이였지만 그것마저도 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하는 불운을 겪으며 전 재산이 250불이라며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1947년 지엠이 주는 연금 형식의 돈으로 살아가다 타계한다.[4]

루이스 쉐보레

루이스 쉐보레(Louis Chevrolet)

루이스 쉐보레는 스위스계 미국인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였으며, 1911년에 설립된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공동 설립자이며, 1916년에 설립된 프론테낙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이다. 쉐보레는 스위스 북서부의 시계 제조 중심지인 뉴차텔의 칸초프퐁에서 태어났다. 1886년, 쉐보레의 가족은 프랑스의 코트도르 주에 있는 발네(Beaune)에서 살기 위해 스위스를 떠났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젊었을 때 기계적인 기술과 자전거 경주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쉐보레는 1895년부터 1899년까지 로빈 메카닉샵(Roblin mechanics shop)에서 일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00년 캐나다 몬트리올으로 이주하기 전에 짧은 시간 동안 일하고 기계공으로 일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 그 다음 해, 그는 뉴욕에서 그의 동료 스위스 이민자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잠시 근무한 후, 디온 부턴의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의 브룩클린 영업부로 이사했다. 1905년에 그는 수자네 트레이유스(Suzane Treyvous)와 결혼했다. 같은 해에, 그는 경주용 자동차 운전자 피아트(FIAT)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리고 1907년, 쉐보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더 오토카 컴퍼니(The Autocar Company)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의 레이싱 경력은 뷰익을 위해 운전하면서 계속되었고, 뷰익의 주인 윌리엄 듀런트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렇게 그와 함께 제너럴모터스의 설립자가 된다.[5]

쉐보레 설립

쉐보레로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루이스 쉐보레의 명성이 워낙 높았고 발음도 좋아 듀런트가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결실을 맺은 쉐보레의 첫 모델 클래식 식스는 4.9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제법 큰 인기를 모았고 쉐보레 브랜드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쉐보레는 당시 최고의 경쟁자였던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1914년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차량 가격 490달러를 모델명으로 사용한 ‘490’은 1927년 100만대 판매 기록을 세우며 포드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만다. 쉐보레는 이후 콜벳, 카마로 등의 혁신적인 스포츠카와 머슬카를 개발하며 포드와 경쟁을 벌였고 소형차 쉬베트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는 이름으로 생산돼 국내에서 판매되기도 했다.[6]

역사

  • 1911년 11월 3일 루이스 쉐보레와 윌리엄 듀런트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쉐보레 모터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 1912년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개발하고 생산했다. 쉐보레 브랜드의 첫 차량인 클래식 식스는 4.9 리터 엔진을 장착하여 당시 최고 속도 65마일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 1913년 쉐보레의 보타이(bowtie)가 회사 로고로 채택되었다.
  • 1914년 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2.8리터 엔진을 얹은 '490' 모델을 선보인다. '490' 모델은 당시 차량 가격이 490 달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1914년 루이스는 듀란트와 디자인에 대한 의견 차이로 듀란트의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 1917년 거래가 성사된 뒤 듀란트는 제너럴모터스 사장으로 취임했고, 쉐보레는 별도 부문으로 지엠에 합병됐다.
  • 1918년 쉐보레는 4인승 로드스터와 5인승 투어링 카 모델에서 V8로 구동되는 모델인 시리즈 D를 선보였다.
  • 1919년 쉐보레의 공장은 미시간 주 플린트에 위치하게 되었다. 뉴욕 주, 오하이오 주, 노우드, 세인트 루이스, 미주리 주, 오클랜드, 캘리포니아 주에 지점 조립 장소가 배치되었다.
  • 1929년 스토브볼트(Stovebolt) 오버헤드 밸리브 인라인 6기통 엔진을 도입했다.
  • 1933년 미국에서 판매 중인 가장 저렴한 6기통 자동차로 광고된 스탠더드 식스(Standard Six)를 출시했다.[3]
  • 1953년 콜벳(Corvette)을 출시했다. 쉐보레 콜벳은 최초로 섬유 유리 소재로 차체를 만들고, 매우 급진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1955년 스몰블럭 V-8 엔진을 발표했다.
  • 1966년 머스탱에 빼앗긴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카마로를 전격 발표한다. 카마로는 나스카(NASCAR) 등 주요 레이싱 경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인기를 얻게 된다.
  • 1967년 1세대 '카마로(CAMARO)'가 출시됐다. 이는 5세대 카마로 '범블비'로 이어졌다.
  • 1970년대에 노바(Nova), 베가 (Vega), 쉬베트(Chevette) 등 소형차를 발표하며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특히 쉬베트는 일본의 이스즈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 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다.
  • 1979년 쉐보레는 1억 번째의 쉐보레 차량을 생산했다.
  • 1984년 쉐보레 최초의 소형차(Sprint) 출시를 시작으로 카발리에(Cavalier), 말리부(Malibu), 에퀴녹스(Equinox) 등 소형차에서 중대형, SUV, 픽업 트럭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 1998년 한국지엠에서 쉐보레 '스파크'를 대우 티코를 대신하여 출시했다.
  • 2005년 스파크 2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
  • 2008년 지엠 100주년 행사에서 볼트 양산차량을 공개했다.[7]
  • 2010년 스파크 3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
  • 2011년 전기차 쉐보레 볼트를 통해 북미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8]
  •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레곤의 시장에 한정 생산형 전기자동차 쉐보레 스파크 EV가 출시됐다.
  • 2015년 4월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4세대 스파크가 공개됐다. 2015년 4분기에 판매되기 시작했다.[9]
  • 2016년 10월 사거리가 200mi(320km)를 넘는 최초의 저가형 양산형 전동차인 쉐보레 볼트 EV 생산을 시작했다.
  • 2017년 쉐보레 볼트는 올해의 모터트렌드카상, 2017년 올해의 오토가이드닷컴 리더스 초이스 그린카, 구매 베스트카 보고, 그린카 저널의 2017년 올해의 그린카 등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타임 매거진 베스트 25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 업무

2010년 현재 쉐보레는 1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11년 전 세계 판매량은 476만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북아메리카

멕시코

멕시코는 다른 지엠 브랜드와 쉐보레라는 플랫폼의 쉐보레 모델을 혼합하여 보유하고 있다. 이 모델들은 미국 쉐보레, 한국지엠, 멕시코 그리고 다른 곳에서 기원되어 왔다. 오펠 소싱 차량의 예로는 벡트라, 아스트라, 코르사, 메리바, 자피라, 캡티바(오펠 안타라) 등이 있다. 멕시코는 또한 셰비(Chevy) C2와 같이 그들 소유의 몇몇 차들을 가지고 있다. 셰비 C2는 재작업된 구세대 콜사(Corsa) B이다. 미국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은 아발란체, 교외, 이쿼녹스, 타호, 샤이엔(실버라도와 유사), 아베오, HHR, 트레버스, 말리부, 카마로, 콜벳 등이다. 한국지엠이 한국에서 조립한 쉐보레 옵트라는 멕시코에서도 판매됐다. 유럽 에피카는 비즈니스 전용 차량으로 판매되었다. 지엠은 또한 주로 미국과 캐나다 등 다른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 멕시코의 교외와 아발란체 같은 쉐보레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3]

캐나다

1915년 맥러플린(McLaughlin)은 캐나다의 쉐보레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 1918년 그는 당시 제너럴모터스의 사장이자 쉐보레 모터사의 소유주였던 듀란트의 인가를 받아 제너럴 모터스의 이사 겸 부사장이 되기 전에 캐나다 제너럴모터스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합병했다. 맥러플린 부부는 캐나다 회사의 소유권을 위해 지엠 주식을 받았고, 워크어빌과 캐나다 제품을 짓는데 1,000만 달러를 받았으나 소유권은 없었다. 캐나다 지엠은 캐나다 자동차, 트랙터 및 제너럴 모터스의 1919년 캐나다 자동차, 트랙터 및 이행이 전적으로 주목하는 민간 자회사로 자산, 수익, 이익 등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지엠은 역사적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기업 중 하나로 1975년에 세 번째 대기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BCE, 조지 웨스턴 유한회사, 캐나다 왕립 은행과 같은 몇몇 상장기업과 비교된다. 캐나다 제너럴모터스는 1989년 온타리오 호수 해안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열었다. 그것은 401번 고속도로의 고정장치로서 보통 거대한 유리 심방 위에 신차의 거대한 그림을 보여 준다. 이것은 제너럴모터스 사의 임대 구조로 오늘날 제너럴모터스라고 불린다. 캐나다의 제너럴모터스는 오샤와에 있는 리치몬드 거리에 그들의 첫 번째 사무실을 지었고 1919년부터 캐나다의 대형 제너럴 모터스 사인이 있었다. 맥러플린 식물은 그곳에 있었고 맥러플린 가족에 의해 사임했다. 2009년 4월 27일, 캐나다 지엠은 모기업의 극심한 자금난에 대응하여 2014년까지 캐나다 일자리의 절반 이상을 줄이고 캐나다 대리점의 40%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제너럴모터스(미국)가 파산한 후 캐나다 내 가맹점을 약 709개 대리점에서 약 470개로 줄였다. 캐나다 정부는 2009년에 매입한 제너럴 모터스 주식의 12%를 2015년 초에 매각했다.[10]

각주

  1. 하고싶은대로, 〈스타일과 성능을 모두 겸비한 쉐보레의 역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0-05-09
  2.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chevrolet.co.kr/chevy/brand-history.gm
  3. 3.0 3.1 3.2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hevrolet
  4. wlswn12u@carlab.co.kr, 〈윌리엄 C 듀란트 (William Crapo Durant) 1861 - 1947〉, 《카랩》, 2014-08-19
  5. Louis Chevrol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hevrolet
  6. 김흥식 기자, 〈레이서 출신의 루이스 쉐보레와 GM의 만남〉, 《오토헤럴드》, 2013-01-03
  7. 하고싶은대로, 〈스타일과 성능을 모두 겸비한 쉐보레의 역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0-05-09
  8. 하고싶은대로,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불러야 하는 까닭은?- 쉐보레 브랜드 히스토리〉, 《쉐보레 공식 블로그》, 2011-01-25
  9. Chevrolet Spar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hevrolet_Spark#Fourth_generation_(M400;_2016)
  10. General Motors Canad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Motors_Canada

참고 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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