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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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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구, 전남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리에 있는 포구. 현재 항구로서의 기능은 많이 쇠퇴하였으나 조기의 어획으로 인한 어항으로서의 기능은 아직도 지속하고 있다.

포구(浦口)는 가 드나드는 어귀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전국에 걸쳐 곳곳에서 포구를 볼 수 있다. 포구는 항구와도 뜻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규모는 작다. 섬진강 영.호남 중간으로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가 9월 전어축제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배가 정박하는 곳을 나루 혹은 포구라고 한다. 차이가 있다면 나루(渡, 津)가 강이나 냇가 등 내륙에 위치하여 하천에 의해 끊어진 길을 연결하며 주로 행인을 건네주는 교통로로 기능한다면, 포구는 큰 강의 어귀나 바다에 접해있으며 대체로 교역선이나 어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를 의미한다. 지금의 항구라 하면 어선보다는 커다란 화물선 등이 드나드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개요[편집]

포구(浦口)는 강이나 바닷가에 배가 드나드는 어귀로, 조선 후기 해상교통이 발달하면서 크게 늘어났다. 18세기 이후 해상교통이 주로 남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대동강 등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다. 해상교통의 발전에 따라 17세기까지 어류, 채소, 세곡운송, 군사적 방어 기능을 주로 하였던 포구의 기능이 점차 상업중심지로 변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포구에는 선박접안 시설이 갖추어지는 포구가 새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상업중심지로 발전하였던 포구들은 주로 강과 바다를 만나는 기점으로 조수(潮水)가 올라갈 수 있었던 포구였다. 규모가 큰 포구는 성루의 경강포구 외에 낙동강 하구의 김해 칠성포(七星浦), 금강 하류에 위치한 은진의 강경포, 그리고 명태 생산의 집산지인 동해안의 원산포, 남해안의 창원 마산포가 대표적이었다.

이외에도 섬진강 유역의 화개장, 하동의 두치장이 포구와 연계되어 크게 발전하였으며, 평안도의 대청무역의 통로구실을 하였던 박천의 진두장도 대정강 연안에 위치한 포구였다. 또한 영산강 하구의 법성포와 사진포, 전주의 사탄(沙灘) 등지도 상업중심지의 포구이다. 이와 같은 포구시장권의 발달은 선박에 의해 운송되는 대규모의 물량을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할 수 있는 큰 소비시장이 포구 주위에 생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와 같은 추세는 큰 포구 주위의 작은 포구에까지 확산되어 갔다. 이에 따라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점차 큰 포구 주위의 작은 포구들도 점차 주변의 장시와 연결되면서 지역 내 시장권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포구취락[편집]

포구는 밀려오는 큰 파도나 불어닥치는 태풍에도 비교적 안전하다. 여기에다 해륙(海陸)의 접속지대가 되므로 예로부터 해양진출의 거점으로 기능해 왔다. 기능이 분화될 경우 어업, 해운, 군사기지로서 유형을 구분하게 된다. 포구는 선박을 이용하는 장소이기에 정박장소가 되는 계류장(繫留場)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포구를 중심으로 계류장이 설치되고, 해운 장비인 각종 선박이 정박하며, 종사자 가옥이 집중된 거주공간을 포구취락으로 규정하였다. 포구취락은 해상교통과 육상교통의 요지에 형성되며, 해양과 육지의 중계장소로 선박을 이용한 물자의 교류가 가능하고 해양과 내륙진출의 결절점이 된다. 포구취락은 강변에 위치한 강상포구(江上浦口)와 해안가에 위치한 해상포구(海上浦口)로 나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상황에서 부속 도서는 물론이고 해외 교류는 포구취락을 통해서 이루어졌다.특히 황해와 남해가 교차하는 호남지방에서 일찍부터 포구가 발달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국제교류의 거점 역할도 수행하였다. 동해안의 개운포(開雲浦)는 이미 신라 시대에 처용(處容)의 상륙 설화가 깃든 포구취락으로 알려졌다. 처용이 고비심목(高鼻深目)으로 표현되듯 외국인의 용모를 갖추고 있으므로 해외교류의 거점인 것이 확실하다. 중요한 것은 ‘산업활동의 메카’라 할 만큼 공업도시로 급성장한 울산이 개운포의 전통을 계승한 점이다.

황해에 자리한 전라남도 영광군의 법성포(法聖浦)는 백제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포구취락으로 알려졌다. 땅 이름에도 불교의 ‘법문(法文)과 성상(聖像)’이 해상 루트를 따라 도래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후 칠산해(七山海)에 기초한 조기의 파시전(波市田)이 형성되면서 어업 활동의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오늘의 ‘영광굴비’는 이때에 기원한 조기의 염장품(鹽藏品)이다. 황해에 접한 소래포구, 김포의 대명포구 등도 포구취락에 해당한다.

중종 때에는 진영을 설치하여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고, 숙종 때에는 첨절제사를 둠으로써 군사 기능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전세(田稅)를 수거하고 검량(檢量)하여 서울로 수송하기 위함이다. 근거지를 위하여 둘레가 1,688척에 이르는 성곽을 쌓았으므로 이 유규(遺構)는 포구 기능을 뒷받침해 온 흔적으로 남는다.

오늘의 취락형태는 해안선을 따라 발달함으로써 호상(弧狀)을 드러내고 있지만, 배후 사면을 활용함으로써 높고 낮은 입체 경관도 표출되고 있다. 취락의 골격을 이루는 간선도로를 따라 수협, 냉동시설, 어구상, 철공소 등 어업 기능과 관련된 시설이 집중해 있다. 이것은 기능 복합의 양상에서 어업 일변의 단순화된 모습으로 포구취락이 탈바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해안에도 최대의 섬인 제주도와 연결을 위해 포구취락이 발달해 왔다. 신라시대의 탐진(耽津)이 대표적이며, ‘탐라로 건너가는 나루터’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시대에는 최단 코스의 이진(梨津)이 활기를 띠었다. 이진이 완도와 인접해 있음을 감안할 때 완도∼제주로 이어지는 오늘의 직항로는 현대적 장비를 활용한 예전의 루트를 복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도에는 조천포(朝天浦)가 거점역할을 하였다. 이곳에는 연북정(戀北亭)이 남아 있어 이곳이 ‘북쪽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해상교통의 거점임을 읽을 수 있다. 제주도에 형성된 포구취락에는 애월포(涯月浦)·금녕포(金寧浦)·차귀포(遮歸浦)·명월포(明月浦) 등이 있다.

강변에 자리한 강상포구로 대표적인 곳은 강경이다. 금강변에 있는 강경은 금강을 통해 거슬러 올라오는 바닷배의 정박지가 형성되면서 물자교류의 장이 되었다.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포는 영산강변에서 발달하였고, 경상남도 하동군에서는 섬진강변에 개치포구가 형성되면서 취락이 발달하였다. 근래 들어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하구둑이 건설되는 등 포구의 기능이 쇠약해지면서 포구취락도 쇠퇴하였다.

포구의 성장과 발달 과정[편집]

조선 후기 상업 중심지로 포구가 성장하였는데 장시보다 큰 규모로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포구의 발달 원인은 도로수레가 발달하지 못하여 물화의 대부분이 수로를 통해 운송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곡이나 소작료를 운송하는 기지로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18세기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포구는 연해안이나 큰 강 유역에 주로 형성되었다.

이 당시 선상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선상은 선박을 이용하여 각 지방의 물품을 구입해와 포구에서 처분하는 상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포구를 하나의 유통권으로 형성하였고 칠성포, 강경포, 원산포 등의 포구에서는 장시가 열렸다. 경강 상인은 대표적인 선상으로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개화기 이후에는 일본 운송업자들에 대항하여 증기선을 구입하려 했으나 실패하기도 하였다.

객주와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들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그 상품의 매매를 중개하고 부수적으로 운송·보관·숙박·금융 등의 영업을 전개하였으며 지방의 큰 장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포구 산업[편집]

우리 나라는 동·서·남의 3면이 모두 바다이므로 배가 통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배에 물건을 싣고 오가면서 장사하는 장사꾼은 반드시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에서 이득을 얻는다. 전라도 나주의 영산포, 영광의 법성포, 흥덕의 사진포, 전주의 사탄은 비록 작은 강이나 모두 바닷물이 통하므로 장삿배가 모인다. 충청도 은진의 강경포는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바닷가 사람들과 내륙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서 서로의 물건을 교역한다. 매년 봄, 여름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을 때는 비린내가 마을에 넘치고, 큰 배와 작은 배가 밤낮으로 포구에 줄을 서고 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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