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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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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차(競爭車)는 다른 회사에서 보유한 자동차와 성능이 비슷하여 경쟁 관계에 있는 차량을 의미한다. 두 차량이 서로의 경쟁차가 되기도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동차 산업은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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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편집]

머스탱 vs. 카마로[편집]

포드 머스탱(Ford Mustang)
쉐보레 카마로(Chevrolet Camaro)

포드 머스탱(Ford Mustang)과 쉐보레 카마로(Chevrolet Camaro)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경쟁차 중 하나이다. 두 회사는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경쟁하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왔다. 그중에서도 머슬카 세그먼트에서 포드 머스탱과 쉐보레 카마로의 경쟁은 전설적이다. 두 차량은 1960년대부터 경쟁을 벌여왔으며 각각 열성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 두 모델의 데뷔 시기는 비슷하다. 머스탱이 1964년, 카마로가 1967년에 데뷔했다. 머스탱이 3년 선배이긴 하지만 이 둘은 반세기 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아메리칸 머슬카를 상징함과 동시에 기술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머스탱은 자타 공인 콤팩트 머슬카라고 할 수 있는 포니카 장르를 개척했다. 미국 자동차 중 대표적인 장수 모델 중 하나로, 수많은 자동차 생산 회사들이 이를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자동차를 생산토록 한 기념비적인 자동차이다.[1] 1964년 출시된 이래 단 한 번도 생산이 끊기지 않았을 만큼 미국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은 차량이다.

반면 카마로는 포드가 머스탱 1세대를 출시하고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67년에 출시된 차량이다. 하지만 초대 카마로는 1969년에 생산을 중단하며 딱 3년간만 판매되었는데, 머스탱 1세대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간 생산 및 판매된 것과 상반되는 수치이다. 또한 카마로는 단종된 적도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오일쇼크와 다운사이징의 여파로 머슬카 장르의 명맥이 뚝 끊겨버리자 카마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4세대를 끝으로 2002년 단종을 맞이하며 머스탱 4세대만이 머슬카와 포니카 장르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했던 것이다. 이때는 머스탱 마저도 4세대가 미국적 색채를 버리고 곡선 형태의 유러피언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뭇매를 맞던 시기였다. 이후 2005년 머스탱 5세대가 미국 머슬카의 정체성이 짓은 레트로 디자인과 차체 사이즈로 돌아오고, 이어서 2009년에는 쉐보레 카마로 5세대가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와 함께 부활에 성공하면서 머슬카의 새로운 막이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 이후 쉐보레 카마로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되었다.[2]

F-시리즈 vs. 실버라도[편집]

포드 F-150(Ford F-150)
쉐보레 실버라도(Chevrolet Silverado)

포드(Ford)와 쉐보레(Chevrolet)의 머슬카 경쟁은 픽업트럭 부문까지 이어졌다. 포드 F-시리즈와 쉐보레 실버라도(Chevrolet Silverado)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픽업트럭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먼저 포드 F-시리즈는 1948년에 첫 1세대가 출시되었다. 쉐보레 실버라도와 1위를 다투지만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포드가 베스트셀링 트럭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포드의 판매량은 가히 대단한데, 인기가 높은 일본세단마저 F-시리즈의 벽을 넘진 못한다. 반면 쉐보레 실버라도의 탄생은 포드 F-시리즈보다 몇 년 후인 1998년도에 첫 출시됐다. 실버라도는 GMC 시에라(GMC Sierra) 플랫폼을 공유하여 생산된 차량으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픽업트럭 시장에서 꾸준히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3]

두 경쟁차의 신경전은 2012년 5월 열린 미국 프로풋폴(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광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발동은 쉐보레의 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걸었다. 제너를모터스는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의 최대 라이벌인 포드의 F-시리즈를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슈퍼볼 시청시간대에 내보내기로 하자, 포드가 광고를 내릴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너럴모터스가 제작한 광고의 첫 장면은 폐허로 뒤덮인 도시에서 '2012 마야 종말 (2012 MAYAN APOCALYPSE)'이라는 문구가 적힌 신문이 나부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잔해를 뚫고 나온 실버라도의 운전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몬다. 목적지에 도착한 운전자는 단 한 명의 친구만이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죽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운전자가 몰던 차는 다름 아닌 포드 픽업트럭이었다고 광고는 말하고 있다. 포드는 제너럴모터스가 광고를 통해 실버라도의 운전자는 종말이 와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포드 픽업트럭의 운전자는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며 제너럴모터스 측에 광고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쉐보레가 슈퍼볼 경기 이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임을 강조했다. 포드는 특히 이 광고가 강조하는 내구성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포드 F-시리즈는 2012년 기준, 35년 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링 카로 이름을 날렸고, 25만 마일(40만Km) 이상을 도로 위에서 달리는 유일한 픽업트럭 브랜드라는 점에서 내구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너럴모터스 2012년에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마야문명의 예언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것에 불과하다며 광고를 내릴 수 없다고 맞섰다. [4]

랜서에볼루션 vs. 임프레자[편집]

미쓰비시 랜서에볼루션(Mitsubishi Lancer Evolution)
스바루 임프레자(Subaru Impreza)

스바루 임프레자(Subaru Impreza)와 미쓰비시 랜서에볼루션(Mitsubishi Lancer Evolution)은 일본 버블시대에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젊은층이 가장 열광하는 차종을 꼽을 때 리스트에 드는 경쟁차 관계였다. 당시 약 3만 달러정도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초고성능 모델이었으며, 4명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실내공간과 어느 정도의 화물까지 실을 수 있어 실용성까지 겸비한 차량이었다. 두 차종 모두 WRC(월드랠리챔피언십) 출전차의 원형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5] 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은 랠리 대회인 WRC를 위해 태어났다. 첫 데뷔는 1992년으로, 당시 WRC 그룹A 랠리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따라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연간 최소 2,500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쓰비시자동차(Mitsubishi Motors)는 준중형급 모델인 랜서를 손봤고, 이것이 란에보의 시작이었다. 한정으로 판매할 계획이었던 1세대 랜서 에볼루션은 좋은 성능으로 입소문을 타 판매 개시 이틀 만에 모두 팔렸으며, 이후 추가 차량을 추가 생산 및 판매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도 좋아졌는데, 3세대는 터보 래그를 줄이는 미스파이어링 시스템을 탑재해 1996년 WRC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4세대는 액티브 요 컨트롤(AYC)을 적용해 코너링 성능을 끌어올렸다. 이로써 2년 연속 WRC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미쓰비시 WRC 팀의 전성기를 이끈 모델은 5세대다. 랜서 에볼루션 Ⅴ는 고질병이었던 브레이크타이어 문제를 해결하고, 운동성을 키웠으며, 최대토크를 높여 3년 연속 WRC 챔피언을 달성했다. 동시에 WRC 제조사 챔피언도 따내 세계 정상에 올랐다. 마지막 버전인 랜서에볼루션 X는 주행성능을 좋게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차체 무게가 늘어나 팬들의 반발이 심해졌고, 판매량이 저조함에 따라 결국 단종되었다.

과거 미쓰비시자동차와 스바루(Subaru)는 라이벌로 통했다. 무대는 WRC(월드랠리챔피언십)였다. 스바루는 1980년대 말부터 레거시 RS로 랠리에 도전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1년에는 대회 규정이 바뀌어 출전조차 할 수 없었다. 스바루는 새로운 규정에 맞춰 모델을 바꿔야했다. 1992년 임프레자가 탄생한 배경이다. 첫 번째 임프레자(Impreza)는 탄탄한 기본기와 좋은 성능으로 인기를 끌었다. 무게중심이 낮은 수평대향 엔진 덕에 선천적으로 운동성이 좋았고, 전륜 기반의 사륜구동 시스템과 LSD비포장도로에 특화되었다. WRC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1995년부터였다. 1995 WRC 드라이버즈 챔피언과 제조사 챔피언을 동시에 따내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인기 있었던 모델인 만큼 여러 버전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모델은 22B STi이다. 22B STi는 1998년에 나온 한정판이다. 스바루 40주년과 3연속 WRC 제조사 타이틀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300마력을 웃도는 엔진으로 유명했고, 무엇보다도 임프레자 랠리카 버전을 일반 도로용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 임프레자(GD)는 2000년에 등장했다. 8년만에 풀 모델 체인지가 되었지만 파워트레인은 1세대 것을 대부분 이어 받았다. 대신 신규 플랫폼을 바탕으로 차체 강성을 높이고 개선된 6단 수동변속기를 달아 운동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WRC에서의 성적은 90년대만 못했다. 2007년 출시한 3세대 임프레자(GE) 역시 WRC에 뛰어들었지만 시트로엥(Citroën)과 포드(Ford)에 밀려나고 말았다. 결국 2009년, 스바루는 WRC를 떠났다. 한편 단종된 랜서 에볼루션과 달리 임프레자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6]

경쟁 브랜드[편집]

페라리 vs. 람보르기니[편집]

페라리(Ferrari)
람보르기니(Lamborghini)

자동차 산업에서 라이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가 바로 페라리(Ferrari)와 람보르기니(Lamborghini)이다. 이 두 회사는 1960년대부터 경쟁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7]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두 창업자는 이탈리아인 그리고 자동차 광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브랜드의 출발은 완전히 다르게 시작됐다.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어린 시절부터 레이싱을 비롯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알파로메오(Alfa Romeo)의 레이서로 활약했던 엔초 페라리는 1929년 자신만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을 세웠다. 지금의 자동차 브랜드 페라리가 설립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47년의 일로, 애초에 페라리는 자동차 제조회사가 아닌 레이싱 팀으로 시작한 셈이다. 반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이탈리아에서 트랙터를 생산 및 판매하며 큰돈을 번 사업가였다.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보다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람보르기니의 트랙터는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자동차 수집가였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소유했었는데, 이후 모종의 사건을 겪은 뒤 페라리를 꺾을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를 세우리라 결심한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는 자신의 페라리를 몰던 중 클러치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다. 트랙터를 만들던 만큼 기계에 능통했던 페루치오는 직접 엔초 페라리를 찾아가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페루치오는 어렵사리 만난 엔초 페라리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만다. 이에 페루치오는 페라리 보다 빠른 차를 목표로 스포츠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를 설립한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슈퍼카로 평가받는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를 만드는 데 성공,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자신의 염원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페라리만큼 존경받는 브랜드는 없다. 태초부터 레이싱팀으로 시작한 페라리는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양산차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도 레이싱카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페라리가 가장 주력으로 출전하고 있는 대회는 포뮬러원(Formula One)이다. 알파 로메오를 제외하면 페라리는 현존하는 F1 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자동차를 잘 알지 못해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전설적인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는 자신의 전성기를 페라리와 함께하며 총 5번의 F1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반면 람보르기니는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카들을 제조해왔지만 페라리에 비해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뚜렷한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람보르기니는 F1이나 르망24 같은 세계적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서킷용 레이싱 카보다는 한정판 공도용 슈퍼카들을 제조하는데 집중했다.[8] 이렇게 강력한 성능과 강렬한 원색,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모든 스포츠카를 압도하는 이탈리아의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슈퍼카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면서 영원한 라이벌이다. 슈퍼카에는 맥라렌 F1(McLaren F1)이나 파가니 존다(Pagani Zonda) 등도 있지만 두 브랜드에 필적해 명함을 내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두 브랜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워온 시간이 그대로 슈퍼카의 역사라고 여겨질 정도이다.[9]

캐딜락 vs. 링컨[편집]

캐딜락(Cadillac)
링컨(Lincoln)

캐딜락(Cadillac)과 링컨(Lincoln)은 미국 럭셔리차 브랜드의 대표주자이다. 대통령의 의전차캐딜락원(Cadillac One) 또한 캐딜락의 제품이며, 캐딜락 전에는 링컨의 모델을 사용하였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연예인들 또한 캐딜락의 에스컬레이드(Escalade)를 이동차량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먼저 캐딜락은 헨리 포드(Henry Ford)의 헨리 포드 컴퍼니로 시작했으며, 포드가 포드 모터 컴퍼니로 옮기자, 헨리 릴런드(Henry Leland)가 파산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오토모빌 컴퍼니(Detroit Automobile Company)[10]를 인수해 캐딜락을 설립하였다.[11] 이후 1909년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되어 제너럴모터스의 럭셔리 디비전을 맡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캐딜락을 제너럴모터스에 매각한 이후 릴런드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링컨이다. 어찌보면 창업자가 같은, 형제 회사라고 할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링컨은 포드 소속으로 럭셔리 디비전을 담당하고 있고, 캐딜락은 제너럴모터스 소속으로 럭셔리 디비전을 담당하며 100년에 가까운 라이벌 관계를 구축해왔다. 링컨과 캐딜락은 번갈아 미합중국 대통령 의전차로 쓰이기도 하며 이러한 라이벌 관계를 현재도 확고히 하고 있다.

오일쇼크 이전까지는 미국 럭셔리 브랜드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경제상황은 일반 중산층도 럭셔리 브랜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특히 캐딜락의 디자이너인 할리 얼(Harley Earl)의 디자인적인 감각은 당대의 유럽차들과는 다른 감각을 뽐내며 미국인들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이 시기 판매되었던 캐딜락은 현재 미국에서 클래식카로 매우 높은 가격을 자랑하고 있으며, 시내에서도 꽤나 보일 정도로 유명한 편이다. 이 시기의 캐딜락과 링컨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데,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 밝기 자동 조절식 헤드램프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 장비를 채용하여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러한 기술적인 부분에선 캐딜락이 앞서나간 부분이 없지않아 있는데,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는 1962년에 미국 법규에 등록되기도 전에 캐딜락에서 선보인 기술이며, 완전 자동 히터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최초로 선보인 기술이다.

메르세데스-벤츠 vs. BMW[편집]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BMW(비엠더블유)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와 BMW(비엠더블유)는 모두 독일 기반의 자동차 회사이다. 두 기업은 오랜 역사 속 경쟁을 펼쳐왔다. 물론 두 기업이 처음부터 경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들었던 본가이고, BMW는 항공기 엔진을 시작으로 점차 모터사이클자동차로 뻗어나갔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패전국으로 전락하겨 두 기업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 금방 회생에 성공한 메르세데스-벤츠와는 달리, 공장이 너무 많이 파괴된 BMW에는 쉽지 않았다. 힘들게 재개에 성공한 BMW는 이전과 달리 대형세단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시장까지 실패를 하며 BMW는 파산 위기로 벼랑 끝에 서게 된다.

1959년 말, BMW 주주총회가 매각을 결정하고 한 회사가 인수에 나서는데, 그 회사가 바로 메르세데스-벤츠이다. 이때 메르세데스-벤츠가 BMW를 이수했다면 자동차 산업은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차종이 메르세데스-벤츠가 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쿠페형 시장에서 만큼은 BMW가 선발주자이다. BMW X6가 성공을 하고, 메르세데스-벤츠가 이를 뛰어넘기 위해 GLE 쿠페를 내놓게 된 것이다. 만약 메르세데스-벤츠가 경쟁 없이 BMW를 인수하여 시장을 독점했다면 출시 당시부터 혹평과 비판을 받던 쿠페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BMW가 최고급 럭셔리차 시장을 장악한 메르세데스-벤츠를 우회해 준중형세단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로 도전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차종이 생길 수 있게 되었고,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경쟁에 맞서며 지금의 완벽한 라인업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두 회사의 경쟁은 끊임없이 진행됐고, 그 결과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모든 세그먼트에서 서로를 대응할 수 있는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플래그십 세단에서 7시리즈-S클래스, 가장 경쟁이 치열한 5시리즈-E클래스, 3시리즈-C클래스 완벽한 경쟁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12]

각주[편집]

  1. 포드 머스탱〉, 《위키백과》
  2. 김태근 에디터, 〈“머스탱 vs 카마로” 머슬카 왕좌를 놓고 펼친 치열한 경쟁, 승자는?〉, 《다키포스트》, 2022-09-20
  3. 황호종 기자, 〈세단보다 인기 많은 픽업트럭, 그 주인공은?〉, 《메거진라이드》, 2018-02-13
  4. 김지민 기자, 〈GM 슈퍼볼 광고에 포드 "열받았다"〉, 《머니투데이》, 2012-02-06
  5. Aiden, 〈추억의 라이벌(임프레자 VS 랜서)〉, 《네이버 블로그》, 2020-09-10
  6. 엔카매거진, 〈아재 형아들 주목! 추억 속 JDM (하편)〉, 《네이버 포스트》, 2019-03-30
  7. 더드라이브, 〈숙명의 라이벌 '람보르기니 vs 페라리' 6가지 차이점〉, 《네이버 포스트》, 2019-09-11
  8. Hyeonuk Joo, 〈페라리 vs 람보르기니, 이탈리안 슈퍼카의 최강자는?〉, 《하입비스트》, 2022-10-09
  9. 조창현 기자, 〈람보르기니 vs 페라리 - 남성의 로망, 가장 탐나는 슈퍼카〉, 《신동아》, 2012-08-22
  10. Detroit Automobile Company〉, 《Wikipedia》
  11. wisconsinlove, 〈(미국자동차)프리미엄 미국차의 대명사, 캐딜락에 대해 알아보자〉, 《네이버 블로그》, 2020-05-07
  12. 모터로이드,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라이벌의 품격〉, 《네이버 포스트》, 2017-02-0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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